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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삶이었다" 초연히 죽음 대면한 5인

호국영인 2015. 8. 27. 17:50

"감사한 삶이었다" 초연히 죽음 대면한 5인

 

"감사한 삶이었다"
초연히 죽음 대면한 5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 누구나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을 대하는 삶의 자세로
귀감이 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1.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美워싱턴포스트 "지미 카터, 품위있는 전직대통령의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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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는 "카터 전 대통령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또 그 어느때보다 솔직하게 '나에게 어떤 일어나더라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자세가 돼있다'고 말했다"며 "이는 그가 퇴임 이후의 활동을 통해 보여준 품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호화로운 기념도서관을 짓거나 연설을 통해 수백만 달러를 벌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민정신에 기반한 캠페인을 벌여나갔다"며 "특히 민주주의를 해외에 전파하고 저개발국의 질병을 퇴치하는데 노력해 생명들을 살리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WP는 "카터 전대통령은 이번 암치료 과정을 통해서도 '조용한 용기'의 모델을 보여줬으며, 이는 현재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그는 여전히 11월 네팔에 가서 국제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을 벌이고 부인과 함께 낚시를 더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 美워싱턴포스트 "지미 카터, 품위있는 전직대통령의 귀감"

2. 올리버 색스 교수

3. 강영우 전 백악관 차관보

4. 최인호 작가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독일의 시인 릴케는 「엄숙한 시간」에서 노래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 세상 속 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 (…) /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 다. / 세상 속에서 까닭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 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 때문입니 다. 우리들이 건강한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병을 앓 고 있는 환자들 덕분입니다. 우리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 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닭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의 희생 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 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 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울고, 내가 굶주리고, 내가 슬퍼하고, 내가 병으로 십자가를 지고 신음하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사랑하 시는 주님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이렇게 위로하고 계십니다.

“슬퍼하지 마라.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하늘나라가 너의 것이다.”
관련기사 : 천주교 서울주보 · 지금 이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5. 법정 스님

[지식채널e] 마지막 여행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는 순간에 대해서는 미리 그대로 열어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육신을 버리고나서
훨훨 날아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습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그곳에선
의자를 조금만 옮기면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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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연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카터 전직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두가

    다음세상을 향하여 갔지만 과연 그들이 왔던 길을 찾아갔을까???

    죽음을 앞에 놓고 초연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에 남겨놓은 것이

    없기에 미련없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몸둥이 생각)를 버리고 혼의 생각만을 한다면 모두가 바르고

    때묻지 않게 깨끗하게 살 것인데...

    이세상에서 진짜 다음세상을 알고 산다면 어느누구하나 공명심

    보다도 자신을 찾으려고 할 것이며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몸둥이를 위하는 욕심에 의하여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꿈속에서도 생각을 못하고 있으며 자만심속에 자신하나만 위할뿐

    남을 위하는 양보가 없는 세상에서 무슨 길을 찾을 것인지..

    

    아픈가운데 그나마 자신을 되돌아보며 남은 시간에 봉사하려는 것은

    자신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잘못한마음을 씻어내려는 것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