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체험 수기 ☆

*** 8 흔들리지 않는 초석 ***

호국영인 2013. 12. 15. 13:08

※소백산 체험기※

 

음이 무겁다는 생각보다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이었지요.

시간이 늦어진데다 초행길이고 서둘러 출발을 했지요.

운전면허를 낸지도 일 년밖에 안됐지만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었지요.

의사선생님 말씀을 떠 올리며 생각하는 사이 차는 벌써 남해고속도로를 진입하여

부산을 향해가고 있었지요.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 숙제를 받았기에 나름대로는 갈등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요.누구하고 의논할 일도 아니고 혼자서 결정을 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일 동안 생각해도 지금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여기밖에 없다는 판단이섰기에

전화로 예약을 하면서 순번을 물으니까 대기환자가 이천명이 넘게 밀려있기 때문에

추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결정을 했건만 앞으로 얼마나 기다려야 수술을 받을수 있을런지 궁금하기만

했지요.다행히 우선순위 선정은 나이가 어린아이들하고 일을할수 있는 젊은 사람을

먼저해준다는 병원관계자의 설명이 있었기에 조금은 기대가 되기도 했지요.

몇 일이 지나고 나서 3개월 후에 수술 날자가 정해졌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감미로운 흥 분의 순간이었지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마음속 깊이 다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집에 식구들까지도 모르게 입을 다물며 3 개월을 기다렸지요

드디어 수술하기 3일 전날 집사람한테 처음으로 이야기를 하였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동안 왜? 예약을 해놓고도 말 한마디 안 해주었느냐며 다니는 절에나 갔다 오자

고 하였지요.   

절에 다녀온 다음날 입원을 하기위한 준비를 마친 우리는 여수행 버스를 타고 병원

에 도착하여 입원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이제 정말 수술을 한다는 실감이 나기시작

했습니다. 

배정된 병실에서 만난 동료환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지요.

다음날 아침 같이 있던 두 명의 동료들이 먼저 수술실로 실려 나가고 나서 나는

후에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긴장을 안 하려고 애를썻지만 막상수술대에 오르니 겁이 많이 나더군요.

마취주사를 맞고 수술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기억이 끊어졌다가 눈을 떳을 때는

실 침대위에 반듯하게 누워있으면서 왼쪽다리는 통기부스가 되어있었지요.

해가 짧은 겨울이라 시계는 저녁시간을 알리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일찍 수술을 받은 두 사람은 마취가 풀리면서 오는 통증 때문에 괴로움을

참느라 힘 이드는 표정들이었지요.

나를 보고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마취가 풀리면 많이 아플거라는 이야기를

였지요.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은 두 번째 수술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보통상식에서 기본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보니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였지요.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커녕 아무런 반응이 없어 오히려 이상할정도로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옆에 누워있는 두 사람하고는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까지 들기도 했지요.

밤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신음하던 두 사람은 아침까지도 전혀 아픈 내색을 안 하

나를 바라보고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신기한 일이 생겼다고 옆방사람들

한테까지 이야기를 하고 다녔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있을 수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뼈를 자르고 기브스를 했는데 바늘로 살짝찌르는 만큼의 통증도 느끼질 않았으니

기적이라고 해야 되나요?

전날 밤 집사람 꿈에 이상하게도 우리가 다니는 사찰이 깨끗한 모습으로 보이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래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기도 했지만 이리했던 저리했던

수술하고 나서 나처럼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이 또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을 하면서도 수수께끼는 풀지를 못하였지요.

입원한지 일주일이 지나 퇴원을 했지만 기브스는 한 달 후에 풀어야 했습니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수술을 어떻게 하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요.

곧바로 방사선과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시는데 무릎관절은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에 무릎 위 여기를 골절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골절부분이 톱니처럼 선명하게 보였었지요.

그리고 나서야 궁금증은 해소가 되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새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모두가 의아한 표정들 이었지요

몸도 새로워졌지만 그동안 돌보지 못한 일들을 더 열심히챙기며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공장이 하나 더 만들어 지기까지 했지요.

정말 내가 생각해도 거침없는 성장뿐이었습니다.

두개의 공장을 돌린다는 소문은 같은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는 먼저 어디서 그많은 물량을 가져다 돌릴 수 있겠느냐며 걱정스런 질투를

하기도 했지요.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부담 없이 편안하게 생각하며 시작을 하였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두개의 공장에서 찍어내는 하루 생산량은 평균 3만족 정도로 직원

들은 매일같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이 바쁘고 직원이 많아지니 잔잔한 사건사고도 종종 있기 마련이죠.

자취하던 직원의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실려간사고.

경리직원의 오토바이 날치기사건.

현장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바늘에 손가락 찔리는 사고. 등 등  

이 밖에도 잡다한 일들이 많이 있었지요.

수술을 하고 재기에 들어선지 삼년이 넘었을 때 부산의 신발업체들은 경영에 어려

을 겪고 있을 시기였지요.

인건비상승으로 인한 동남아진출로 오더가 감소하여 도산하는 업체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우리가 거래하는 업체들 중에서 비중이 제일 큰 업체가 도산 위기를 맞았을

때는 말할 수 없이 참담했습니다.

피해를 본 돈도 중요하지만 우선당장 일거리가 더 문제였지요.

옛날이야기 속에 호랑이한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다고 했듯이 어차피

피할 수없는 길이라면 좋게 생각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기에 편한

마음으로 정리를 했지요.

밖에서는ㄷ 업체 도산으로 인한 잃어버린 숫자가 4억 8천 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우리공장도 같이 문을 닫게 될 거라는 입소문이 떠들썩했습니다.

남의일이다 보니 하기 쉬운 말로 사촌이 땅 을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듯이 그동안

우리공장을 보고 배들이 많이 아팠던 것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었지요.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픈 사람은, 자기가 잘되면 남의배가 아플까봐 걱정

돼서 일부러 열심히 안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지요.

그러나 입소문처럼 처음부터 대비도 없이 허술하게 사업을 시작하지는 안했지요. 

사업은 항상 변수가 많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안전하게 운영하기를 기

으로 정해놓고 하였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차분하게 넘어가게 되었지요.

'위기가 기회' 라고 했듯이 기계대수는 많고 물량은 모자라고해서 기계를 일부처분

하고 정리를 해보니 적당한 건물을 마련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에 생각

도 않았던 건물이 하나생기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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