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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생존” 외교문서 발견

호국영인 2013. 7. 6. 08:46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생존” 외교문서 발견

 

독일.영국 보관소서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되지 않고 피신해 생존했다는 내용을 담은 독일과 영국의 외교문서가 발견됐다. 명성황후는 1895년 10월8일 새벽 경복궁 건청궁에서 살해당했다는 게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정상수 한국방송통신대 통합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4개월 뒤 명성황후가 살아 있다는 내용을 담은 독일 외교비밀문서와 을미사변 때 탈출했다고 기록한 영국 문서를 각각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와 영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았다”고 30일 밝혔다.

1896년 2월6일 러시아 주재 독일대사 후고 라돌린이 독일제국 총리 실링스퓌르스트 호엔로에 앞으로 보낸 비밀문서. “러시아 외교부 장관 로바노프가 자신의 정보에 따르면 죽었다고 이야기되는 한국의 왕비가 아직 살아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베베르)는 왕비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는지를 한 명의 한국인으로부터 아주 비밀리에 요청받았다고 한다. 로바노프는 일본군이 한국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국에서 철군한 것처럼 일본군도 더 이상 한국에 주둔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Fürst Lobanow sagt mir gesprachsweise, daß seinen Nachrichten zufolge die todt gesagte Konigin von Korea, noch lebt. Der russische Gesandte in Soul ware sogar von einem Koreaner geheimnißvoll gebeten worden, der Konigin Aufnahme in der russischen Gesandtschaft zu geben. Der Furst meint, daß die Japaner doch ziemlich saumselig in der Raumung von Korea seien. Ihr langeres Verbleiben deselbst hatte keinen Grund mehr da auch die Chinesen das Land geraumt hatten.)고 적혀 있다.

 

독일에서 발견된 문서는 1896년 2월6일 러시아 주재 독일 대사 후고 라돌린이 독일제국 총리 쉴링스퓌르스트 호엔로에 앞으로 보낸 비밀문서 해독문이다. 이 해독문은 “러시아 외교부 장관 로바노프가 자신의 정보에 따르면 죽었다고 이야기되는 한국의 왕비가 아직 살아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베베르)는 왕비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는지를 한 명의 한국인으로부터 매우 비밀리에 요청받았다고 한다”고 적었다.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 월터 힐리어가 1986년 2월11일 아관파천 나흘 뒤인 2월15일 베이징 주재 영국 대리공사 뷰클럭에게 보낸 문서. “왕(고종)은 여전히 왕비(명성황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The King is still unable to say whether the Queen is alive or not.)고 적혀 있다.


영국 문서는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 월터 힐리어가 아관파천 나흘 뒤인 1896년 2월15일 명성황후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고종의 입장을 보고한 내용이다. 힐리어는 베이징 주재 영국 대리공사 뷰클럭에게 “지난 10월8일 사건(을미사변)과 관련, 왕세자(순종)는 가까스로 살해를 모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은 여전히 왕비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말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정 교수는 을미사변 직후 작성한 문서도 찾았다. 힐리어는 1895년 10월9일 베이징 주재 영국 공사 니콜라스 오커너에게 “일본인들이 서너 명의 궁녀를 죽였다. 그리고 왕비는 사라졌는데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어 10월22일에는 오커너에게 베베르가 자신을 방문해 왕비의 생존 가능성을 이야기했다는 보고서를 보냈다. 정 교수는 “독일·영국 등 당시 조선과 관계를 맺던 나라들의 외교문서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다”면서 “명성황후의 시해를 당연시할 게 아니라 새로운 사료 발굴로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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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년이나 지난 사건의 문서를 지금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당시 얼마나 황급했음을 생각한다.

    일본의 잔악무독함은 만천하가 알고있겠지만 그당시 왕비가

    진짜 살아났다면 어찌 역사에 흔적조차 없었을까.

    숨어 살았다고해도 숨을 거두면 살아온 발자취는 남아 뒤에

    사람들에 입으로 입으로 뒷말이 남는 것인데...

 

    우리는 살다보면 역사를 조작하는 경우도 많기에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민비가 살아 남았더라도 역사에서 살아졌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뒷이야기를 할 것인지 알 수없는 일이다.

    왕비라 하더라도 이미 저세상을 향해 떠나간지가 백여년이

    지났으며 그녀자신은 세상의 삶에만 치중을 하였을뿐 진짜는

    자신이 다음세상 갈 길에대한 것을 알지 못하고 떠났으며

    현생에 왕비라하더라도 다음세상에 자신이 왕비가 된다는

    보장도 없듯이 살아있을때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은 민비가 살던 시대를 모르기에 비운의 왕비를

    지금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며 이렇듯 지위고하를 망론하고

    자신들의 갈길을 찾는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