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남긴 흰도화지‘꽃불’났네

겨울이 남긴 흰 도화지 ‘꽃불’났네

(전남 구례 산수유 속으로…)

봄볕을 따라 나선 길에 웬 낭패인가 싶었다. 늦은 밤 창밖에 경쾌한 음악처럼 봄비가 보슬거렸는데, 그 밤에 지리산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유장하게 이어진 지리의 능선이 새벽 햇살에 반짝이는 흰 눈을 가득 이고 있었고, 긴 겨울에다 꽃샘추위까지 겹쳤고, 급기야는 서울에도 폭설까지 쏟아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래도 아무렴 계절을 거스를 수야 있을라고. 성성한 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지리산 아랫녘 마을에서는 어김없이 봄꽃들이 화르르 불붙고 있었다.                                    ↑ 지리산에 밤새 흰 눈에 내려 덮인 날, 만복대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둔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인근의 위안제 주변에 산수유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설경과 어우러져 노란 꽃이 더 화려하다.   전남 구례. 이른 봄 여정에서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남도의 땅이 아직 무채색 황량한 풍경일 때도, 지리산이 때늦은 눈에 덮여 있을 때도 구례에서는 이맘때쯤 아우성처럼 산수유꽃이 피어난다. 구례 산동면 일원에는 산수유로 이름난 상위, 현천, 계척마을마다 산수유꽃들이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고 있으며, 지리산은 눈 덮인 흰 이마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데, 산 아래 이끼 낀 돌담의 마을에는 샛노란 산수유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둘러져 있었다. 봄기운을 먼저 느끼고 일찍 피기로는 매화가 으뜸이지만, 한꺼번에 일제히 꽃을 터뜨리는 것은 산수유를 따를 수 없으며, 매화가 몰래 잠입해 적의 기미를 엿보는 '봄의 전령'이라면, 산수유는 야음을 틈타 삽시간에 진주해 오는 적군처럼 온 천지를 샛노란 봄 색깔로 점령하여 버리는 '본진 병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땅의 봄은 구례 산골 마을에 산수유가 만개하여야 비로소 당도하였다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봄이면 구례에서 화사한 산수유꽃에만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그 깊은 지리산 아래 산수유 피는 산골마을에 어디 오래된 이야기 한 자락쯤 없을라고. 그 이야기를 따라나서 옛 고갯길 자취를 더듬고 지리산 마지막 곰사냥의 전설도 따라가 보았다.   불로초를 찾아나섰다는 서복의 어렴풋한 자취를 만나기도 하였고, 뜻밖에 김시습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지리산 만복대 아래 깊은 산중마을 주민들이 지리산 맑은 물을 비밀처럼 모아둔 숨어있는 자그마한 저수지 앞에 당도하기도 하였으며, 지리산을 덮은 눈과 그 아래 산수유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물가의 풍경은 쉽사리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봄꽃만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지도를 그려서 내밀수 밖에 무어 더 보탤 말이 있을까. 봄꽃의 화사함이야 그것만으로도 족 하지만, 꽃을 두른 산골마을 이야기까지 곁들여 진다면 봄꽃을 찾아나선 여정을 더 풍성하게 하여줄 수 있겠지만, 지리산 산중마을을 오르내리면서, 고갯길의 기억을 품고 있는 산골마을 사람들을 찾아나서면서, 길어낸 사연들을 여기 풀어본다.                     ***호국인촌 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