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메이커 삽, 젓가락, 바리깡까지,
이 열풍은 대체 뭐지...
1~2년 전부터 패션계에 기이한 바람이 불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열광하는 ‘베트멍’이라는 브랜드는 배송업체 ‘DHL’ 유니폼 같은 티셔츠를 185파운드(약 27만5000원)에 파는 가하면, 나오는 족족 품절·리셀(웃돈을 붙여 재판매) 대란을 일으키는 ‘슈프림’은 바리깡, 삽, 벽돌, 젓가락, 술병 같은 걸 내놨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베트멍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더니, 가죽으로 만든 ‘이케아 가방’(2145달러·약 242만원) ‘할머니 세탁 가방’(1850달러·약 208만원)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몇 장의 사진을 보자.
그러니까, 이런게 왜 유행하는 걸까.
‘슈프림 벽돌 이해하려고 노력 중. 진심, 이게 왜 존재하는 거지?’ –영국 패션매체 데이즈드
‘그래서 누가 발렌시아가의 975파운드(약 145만원)짜리 시장 가방을 사는 걸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사기 아니면 전복? DHL 티셔츠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된 방법은?’ –영국 일간 가디언
‘700달러(약 79만원)짜리 양말 모양 신발은 어떻게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운동화가 됐나’ –미국 경제매체 쿼츠
요즘 유행인 패션을 보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눈길을 확실히 끌 수 있는 디자인 ▲불량 청소년·변두리·비주류의 하위문화를 럭셔리로 재해석 ▲유머러스함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어그로’(온라인에서 논쟁·관심을 끌어 모으는 행위를 일컫는 인터넷 용어)가 중요해 보인다. 트렌드 분석가 알렉산드라 시만스카는 가디언에 “베트멍은 자본주의를 ‘키치’(저속하고 조악한 B급 문화)하게 해석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하다”며 “요즘은 럭셔리를 정의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관건은 ‘시각적인 주목도’를 얼마나 끌어 모으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래도 ‘슈프림 야전 삽’ ‘250만원짜리 이케아 가방’은 너무한 거 아닐까. 패션매체 데이즈드 코리아의 이현범 편집장 겸 발행인에게 물어봤다.
-요즘 유행한다는 제품을 보면, ‘인터넷 어그로’가 필수요소처럼 보여요. ‘소셜미디어에서 얼마나 흥하느냐’가 중요해진 걸까요.
“몇 년 전부터 ‘인스타 프렌들리’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패션계가 진행하는 컬렉션이 요즘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면 이해가 될 거에요. 과거에는 컬렉션을 위한 쇼 피스(하이패션은 오트쿠틔르 쇼를 해서 오트쿠틔르 피스가 있었습니다), 바이어를 위한 커머셜 피스로 구성됐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한 e커머스 시장이 가장 큰 판매처이자 마케팅 섹션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됐어요.”
-그렇다면 ‘베트멍의 DHL 티셔츠’가 패션계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낸 건가요.
“베트멍 디자이너들이 (소셜네트워크 위상이 올라갔다는) 흐름을 간파하고 영리하게 ‘선점’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요즘은 단지 화제에 오르는 ‘입소문용 제품(바이럴 피스)’을 넘어, 충격과 논쟁을 부르는 ‘쇼킹 피스’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바이어들은 시즌마다 컬렉션 흐름을 짚어주는 (과장된) 옷을 ‘마네킹 피스’(마네킹에 입힐 옷)로 따로 구매 하기도 하는데, 이제는 아예 ‘소셜네트워크와 e커머스 시장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피스가 필요해졌어요.”
-일종의 ‘인스타용 아이템’이네요. 옛날 ‘고품격 럭셔리’ 패션을 향유하던 세대는 이런 트렌드가 ‘얕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며칠 전 국내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사모펀드에 600억원에 팔렸습니다. 이제 오프라인 백화점, 기존 상권, 홈쇼핑 채널도 디지털 흐름을 간과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미국·유럽 패션계에서 온라인에 예민한 10~20대 소비자층은 가장 큰 목소리로 의견을 내는 집단으로 떠올랐어요. 디지털 플랫폼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주류’가 된 겁니다.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엄마, 그 옷 입지마. 촌스러.’ 엄마는 고민할 거에요. 패션계는 이미 10~20대의 디지털 언어에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돈의 시대가 온 것 같다’고도 말합니다.”
베트멍 DHL 티셔츠와 이케아 가죽 가방, 슈프림 ‘바리깡’을 “영리하다”고 하는 건 이런 유행이 실은 ‘그다지 새로울 것 없기 때문’이다. 이미 100년 전에 변기를 ‘샘’ 이란 작품(1917)으로 내놓은 마르셸 뒤상이나, 반세기 전에 ‘기성 세제 상자’를 복제해 작품(브릴로 박스·1964)으로 만든 앤디 워홀이 이런 류의 ‘파격’을 선보였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현상을 “‘체제·권위에 대한 유쾌한 저항’으로 포장한 상술”이라고 폄하하는 건 안이한 태도일지 모른다. 시대가 바뀐 걸 간파한 신예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채널에 먹힐 만한 ‘논쟁적 제품’을 내놓고, 혁명적 예술가처럼 거론되면서, 패션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작전이 성공한 것 임에는 틀림없다.
‘아재 감성’인 <디테일추적>은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아, 이런 걸 사는 사람들을 찾아 ‘왜 사느냐’고 물어보기로 했다.(☞기사 링크:"'슈프림 바리깡' 인터넷에서 보고, 인터넷에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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