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은자의 풍류서예
LA 거주 하며 서예 속 은거
욕심 없는 글씨, 격조 가득
내일까지 인사동서 열려
소지도인은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에 살면서 집에 드나들던 개혁사상가 양계초, 화가 제백석, 문학가 호적 등을 가까이서 보면서 성장했고 서예 스승 양소준(楊昭儁)과 인연도 이때 맺었다. 북경사범대학 중문과 졸업, 유창한 중국어, 격조 높은 고문, 문·사·철에 박통, 일휘경인의 서예… 소지도인의 경력이다. 광복한 조국에 돌아온 그는 검여 유희강, 소전 손재형,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청명 임창순, 연민 이가원 등과 함께 서예활동을 하다가 1977년 홀연히 LA로 이민을 떠났다. 그후, 강창원은 도시의 은자가 되어 평생을 서예로 살았다.
세로는 30cm, 가로는 고작 7~8cm밖에 안 되는 조각 종에 쓴 작품임에도 어느 큰 글씨도 당할 수 없는 큰 기상이 충만해 있다. 소소밀밀(疏疏密密)! 바늘 하나도 들기 어렵고 바람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가 하면 말이 질주할 것 같은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격조 높은 서권기와 문자향이 흐른다. 단지 머리 안에 쌓여있는 적전(積典)의 책에서 나오는 기와 향이 아니라, 육화한 화전(化典)의 책, 즉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의 ‘破(독파)’에서 생성되어 ‘하필여입신(下筆如入神)’의 표현을 통해 나오는 서권기와 문자향이다. 입신 즉 귀신들린 경지의 글씨라서 기상이 일렁이면서도 결코 요란하지 않다. 부동심과 평탄지기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잘 쓰기 위해 결코 애쓰지 않았다. 그래서 소지도인은 98세, 99세 그리고 100세에도 스스로 그러하게 놓아두는 ‘일임자연(一任自然)’의 서예를 하며 장수를 누리고 있다.
소동파는 말했다. 양의(良醫)는 과(科)를 나누지 않고 무슨 병이나 다 잘 고치듯이 훌륭한 서예가는 어느 체든 한 가지 이치로 깨달은 법을 통해 고격을 이룬다고. 소지도인의 글씨야말로 법으로부터 시작하여 파법을 거쳐 다시 위대한 격으로 승화한 글씨이다.
안타까울 손, 현재 한국 서단에는 소지도인의 이러한 고격의 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결코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애써 ‘작업’을 하는 서예가 만연할 뿐 스스로 그러하도록 자연에 맡기는 풍류서예를 만나기 어렵고, 독파만권의 서권기, 촌철살인의 풍자를 담은 ‘글 그릇’을 가진 서예가가 드물기에 소지도인의 고격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소지도인의 100세 기념 서예전이 내일까지 열린다. 서둘러 찾아가 봐야 할 것이다.
김병기(서예가, 서예평론가, 전북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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