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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못한 46용사도.." 눈물바다 된 천안함 장병 결혼식

호국영인 2016. 6. 21. 08:12

"참석못한 46용사도.."

눈물바다 된 천안함 장병 결혼식

[생존 장병 전준영씨, 예비역 중 처음으로 웨딩마치 울려] 주례는 당시 함장 최원일 중령.. 생존 장병 20여명·유족도 참석 전사한 신랑의 입대 동기 4명, 이름 한명씩 부를 땐 울음바다 신부, 신랑에 격려 글 남긴 인연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에 결혼식 못올리고 남매 낳고 살아...

조선일보 | 전현석 기자 |

지난 5일 서울의 한 결혼식장. 주례를 맡은 최원일 해군 중령이 "상민아, 상희야, 용상아, 재민아. 하늘에서도 신랑, 신부 축하해주고 이 예쁜 가정 잘 지켜다오"라고 하자 장내가 울음바다가 됐다.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을 맞은 신랑 전준영(29)씨와 신부 최송이(29)씨도 눈물을 흘렸다.

신랑 전씨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 생존 장병 58명 중 한 명이다. 전역한 예비역 장병으로는 처음으로 이날 결혼식을 올렸다. 최 중령은 천안함의 함장이었고, 최씨가 호명한 4명은 신랑 전씨의 해군 입대 동기로, 천안함 사태 때 전사한 고(故) 이상민·이상희·이용상·이재민 하사였다. 당시 북한의 공격으로 46명이 전사했다. 전씨는 천안함 동기 5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200여명 중 천안함 생존 장병 20여 명과 유가족 10여 명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씨는 천안함 폭침(爆沈) 직후인 2010년 5월, 승조원 중 제일 먼저 제대했다. 전씨는 "사회에 나와 보니 전우들과 함께 있었던 군대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패잔병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때문"이었다고 한다. 우울증, 대인 기피증도 걸렸다.

전씨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격려 글로 다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신부 최씨는 격려 글을 남기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전씨는 2010년 현충일 행사 참석을 위해 하루 전인 6월 5일 대전에 들렀다가, 당시 대전에 살던 최씨를 처음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전씨는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결혼식 날짜를 6월 5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제대 후 갈피를 못 잡던 전씨는 최씨를 만나고 힘을 얻었다. 그가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장인·장모도 그에겐 큰 힘이 됐다. 둘은 부부가 됐고 딸(5)과 아들(2)까지 낳았지만,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다. 최 중령은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그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최근 천안함 행사에서 만난 유가족분들과 전우들이 '아이들도 크는데 언제까지 결혼식을 미룰 거야? 빨리 해야지'라고 말씀해주셔서 결혼식을 올릴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전씨는 택배 기사, 휴대전화 영업사원 등을 거쳐 현재 대전의 한 자동차회사 대리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자주 찾아간다고 한다. 어린 딸과 아들에게 "여기 누워 있는 삼촌들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어. 잊으면 안 돼"라고 자주 말한다. 전씨 가족은 지난 3월 26일 천안함 피격 6주기 때 평택 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도 보고 왔다. 전씨는 "우리 아들딸은 평생 천안함 용사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중령은 주례사에서 "매우 안타깝게도 이 기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하늘에 있는 46명 전우를 대신해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전준영군, 최송이양 행복하게 잘 사세요'"라고 말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최 중령이 "먼저 간 전우들의 몫까지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자 신랑·신부가 울먹이며 "예"라고 대답했다. 하객들도 눈물의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