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소식

소의 눈물 … 워낭소리가 스러진다

호국영인 2011. 1. 11. 08:26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 커다란 눈에 한 줄기 이슬이 맺혔습니다.

소를 친구처럼, 자식처럼 여기며 살았던 농민은 가는 자식을 위해

여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잘가라" [대전=프리랜서 김상태]

워낭소리가 스러진다. "댕 댕 댕…".

까만 눈망울 속에는 원망도, 비난도 없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언뜻 보이는 이슬. 소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가 봅니다.

'주인님 저는 갑니다.

저 세상에서 다시 인연을 맺지요.

그땐 강한 무릎과 넉넉한 등으로 주인님을 태워 드릴게요.'

소는 이렇게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최석현(59)씨는 눈물을 참았습니다.

"사람인 제가 눈물을 보이면 저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잘 가라 내 새끼야.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7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백운한우영농조합법인 목장.

결국 구제역 재앙(災殃)이 목장을 덮쳤습니다.

이날 최씨는 396마리의 소를 가슴에 묻어야하였습니다.

 

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24시간 목장에서 살았습니다.

사료 차 외에는 아무도 목장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지난달 31일에는 모든 소에게 구제역 예방 백신을 접종하였습니다.

그러나 6일 새벽 축사 안의 소 3마리가 침을 흘렸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었지요.

"아! 결국…." 양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좋은 한우를 키워보자'며 그는 30년간 소와 함께 살았습니다.

소가 끄는 달구지에 타고 그는 세상을 헤쳐나갔습니다.

소는 그의 자식이자 어떨 때는 친구였습니다.

송아지가 태어나 식구가 늘면서 두 아들도 대학공부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는 말을 못했지만 끔뻑거리는 눈으로 그에게 말을 거는 듯하였습니다.

최씨는 이날 이런 소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최씨는 과거 여물을 끓이는 것과 같은 정성을 담아

최고급 사료를 수북이 담아내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배불리 먹고 가라고요."

김기택 시인은 소의 눈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 순하고 동그란 감옥의 문이 닫히는 걸 보고

자기 가슴에도 지울 수 없는 감옥이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아내가 걱정이죠. 애들처럼 애지중지한 소들인데…."
그의 아내(55)는 이날 아예 목장을 찾지 않았습니다.

소들이 가는 뒷모습을 볼 수 없다며 하루종일 집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우울증에 걸릴까 최씨는 걱정이다라고합니다.

"잠이 올까요? 저 술 한잔 하렵니다. 취해도 자지 않을 겁니다.

꿈 속에 얘네들이 나올 것 같아서요."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습니다 /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김기택의 시 '소')

 "잘 가거라, 이 아비는 아무 할 말이 없구나…." 

                                **호국인촌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