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 집에만 오면 입을 닫는다
올해 칠순을 맞은 이기준(가명)씨는 오늘도 혼자서 밥상머리에 앉는다. 2년 전 암수술 뒤 홀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아내는 바깥일로 바쁘고 같이 사는 딸은 냉랭하다. 20대 초반 결혼해 40여 년간 일군 가족은 이제 주위를 맴돌 뿐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섬유공장에서 일하며 새벽별을 보던 그였다. 보수를 높게 쳐준다는 공장이 있으면 해외도 마다하지 않았다. 60대 중반 직장에서 은퇴하고 경비일까지 쉼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투명인간 취급하는 딸뿐이다.
결혼 적령기를 넘은 40대 이미숙(가명)씨는 오늘도 허공에 대고 인사를 한다. 역시나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지난해 아버지와 ‘사건’을 치르고 난 뒤 입을 닫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일한 그녀는 최근 직장을 옮겼다. 일터에서는 동료들과 사이 좋은 직장인이지만 집에만 오면 말문을 닫는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를 차지하는 아버지를 피해 방문도 닫았다. 가끔 마주치는 아버지도 좀처럼 말을 걸지 않는다. 아버지 역시 그녀를 지나치기 시작했다.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말을 안 해요.” 딸 미숙씨는 ‘투명인간’ 사례를 찾는 <나·들>의 트위터를 보고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가족 일을 남에게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지 말을 아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연 그녀는 아버지와 해를 넘겨 사실상 대화를 끊고 지낸다고 털어놨다. “술 때문이죠, 술.” 화목하지 않은 가족의 단골 메뉴다. “술 마시면 주사가 심해요.”
아버지가 암수술을 받은 건 2년 전이었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어요. 가족이 모두 놀랐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을 마친 뒤 지금은 통원치료하고 있다. 가족이 아버지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수술 뒤에는 술을 멀리했는데 이틀 연속 과음하고는 심하게 주사를 부리셨어요.” 딸은 지난해 여름쯤으로 기억했다. 왜였을까? 아버지는 “답답했으니까” 했다. 그날 이후로 딸은 사실상 아버지와 관계의 끈을 놔버렸다. 한 번의 실수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로 이어지긴 쉽지 않다. 과거에도 쌓인 게 많았으리라.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그랬어요.” 딸은 어렸을 때부터 술 취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피해자였다. “주사를 자주 보게 되면 멀어지게 돼요.” 말꼬리를 흐렸다. 결정적 사건이 있기 전까지 부녀는 그럭저럭 대화를 나누고 살았다. “아버지가 다정다감한 편도 아니고, 자식들하고 돈독하지도 않았어요. 저도 그런 편이고…. 그렇지만 살갑지는 않아도 같이 식사도 하고 안부 정도는 묻고 살았지요.”
술·주사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직업도 단절을 거들었다. 야간 일과 지방 일이 늘어날수록 아버지와 자식은 얼굴 볼 시간도, 대화도 줄었다. “아버지는 주말에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세요.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보는데 그게 싫어 짜증을 냈어요.”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쩌면 딸이 어릴 때부터 평행선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결정적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부녀라는 자기장이 희미하게 둘을 끌어당겼지만 이젠 그 자기장마저 완전히 인력(引力)을 잃었다.
현재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딸이 살고 있다. 전에는 아버지가 주사를 심하게 부리면 오빠들이 중재했지만 분가 뒤에는 딸 몫이 되었다. “아버지는 해코지는 안 하세요. 다만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죠.” 그날도 그랬다. 중재에 나서야 할 딸은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술이 깬 아버지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단호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인간적으로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대화하기 싫은데 나 스스로 스트레스받으며 뭔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피해자의 위치는 엄마에서 딸로 넘어왔다.
그 뒤로 대화만 끊긴 것이 아니다. 둘이 있을 때는 식사도 일부러 피한다. 딸은 “제가 같이 안 먹죠. 저도 혼자 먹고, 아버지도 혼자 드시죠”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색하고 할 말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말에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딸은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자신도 투명인간이 되었다.
손홍규의 단편소설 <투명인간>을 보면 아버지의 생일에 투명인간 놀이를 하는 가족이 나온다. 아버지를 놀려주기 위해 어머니와 여동생, 아들은 아버지를 못 본 체한다. 한갓 놀이로 시작한 생일잔치는 실제로 아버지의 상실로 이어진다. 가족은 뒤늦게 아버지의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투명인간일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가족을 외면한다. 가족이 되레 아버지에게서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투명인간의 주체가 바뀌는 장면이다. 소설은 투명인간이 사건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서사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평생 가족만 바라보고 살아왔을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는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현재의 처지가 겹친 마른 소리가 났다. “가족을 살갑게 대하지 못했지요. 내가 하는 일이 주로 밤일이고 지방으로 일 다닐 때도 많아서…. 자식들한테 미안하죠.” 그렇다면 아버지는 딸이 말한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술을 좋아해서 탈이에요. 나는 다 잊었어요.”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와 딸의 편차가 느껴졌다. 평소 대화가 부족했던 아버지는 딸이 왜 집을 나가겠다고 하는지, 왜 이제야 폭발했는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의 침묵이 과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딸은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을 아버지는 ‘과정’으로 기억했다. 딸과의 거리는 평행선이 아니었다. 더 멀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요즘 일주일에 네 번 ‘정기’ 외출을 한다. 구청 컴퓨터 강좌를 듣는 것이 낙이다. “비슷한 연배들이 모여요.” 그리고 오후에는 뒷산에 오른다. “집에 혼자 있기 답답하니까….” 하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살얼음을 걷는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딸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거실에서 마주치면 말 걸 생각도 안 하죠. 이렇게 살다 한평생 가는 거죠.” 아버지는 체념 상태였다. “젊을 때부터 그랬는데 지금 굳이 살갑게 하는 것도 어색하잖아요.” 아버지는 자식들과 데면데면하던 과거를 시인했다. 하지만 현재 관계 복원에는 소원하다. 스스로 투명인간임을 자처하고 사는 것일까? 아니면 병마를 겪고 난 뒤 약해진 것일까? “딸도 귀찮아할 테고.” 아버지는 딸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투명인간 행세를 하고 있다.
소설 속의 나와 아버지는 허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알게 모르게 투명인간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돌이킬 수 없게 된 상황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 사람은 살아가는데 실수는 결과라는 것을 알고사는지..
탁자위에 있던 컵을 실수하여 떨어뜨렸다면 컵이 깨지는
결과라고 보는 것이며 컵이 떨어져 깨지지 않고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가 있으면 실수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깨진 컵을 보면서 결과라고 하여야 하는데도 실수
라고 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젊어서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술마시고 주사로
부인을 괴롭혔다면 그 가정자체를 제대로 이끌어 갔다고
볼 수없으며 또한 자신이 가정을 위해서 밤일을 해서까지
돈을 벌었으면 무엇하나 가정자체를 제대로 행복하게
이끌어 가지를 못한 그의 잘못을 나이들어서까지 아버지는
지금도 술을 마시면 주사가 나와 자식까지 이제는 외면을
하도록 만든 그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젊어서 술을 마시면서 시작된 실수를 이제 결과를
자신 스스로가 보고 있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아버지의
문제도 누구를 탓하기전에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자신이 식구들의 아픔을 풀어주고 화해를 이끌어 화목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