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신인촌 소개

지구 밭갈이

호국영인 2011. 11. 6. 04:16

 

 

<지구 밭갈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인연 때문입니다.

이 인연은 참으로 기묘하게 어울려 있습니다.

하늘ㆍ사람ㆍ땅이 조화되어 우주를 이루고 있으니

이만한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언뜻 보면 온 세상이 참 조화롭게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사람의 눈에는 만물이 모두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입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나’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름답게만 보이던

하늘과 땅이 모두 황폐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나’ 자신부터 되돌아봅시다.

눈만 뜨면 남보다 조금 더 가지기 위해

물신의 유혹을 받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건전한 노동을 통해 얻게 되는 대가라면 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활방식이기에 아름다운 소유라고 하겠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소유 형태를 벗어나 물질로 치장하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현실세계는 이기적으로 물든

인간 본연의 맑은 영혼마저 스스로 갉아먹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 허황된 욕망은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숲과 나무들을 잘라내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이 땅의 자연을 훼손시키기에 여념 없는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점차 돌무지로 변해가며 나무와 꽃이 생장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된 땅을 돌아보고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땅이 이러니 땅과 조화를 이루고 있던

하늘도 오염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닐하우스처럼 온실을 만들고,

그 높은 기온으로 남극의 빙하를 녹여 해수면을 높이는 바람에

잦은 태풍과 겨울 같지 않은 겨울, 여름 같지 않은 여름 등의

이상기후가 연속되고 있으며, 잦은 지진과 해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일으킨 것은 땅도 아니요

하늘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약한 동물인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육중한 코끼리를 움직이고, 백수의 왕인 사자를 희롱할 수 있기에

그 일이 가능했겠지만, 그러나 맑고 깨끗한 영혼을 팔아서

얻은 대가치고는 너무나 혹독한 대가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동안의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이제는‘지속가능한 개발’로 그 형태를 바꾸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자연이 되어야 하겠지만,

후손들도 누릴 수 있는 자연이 되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지속가능한 개발’입니다.

 

이미 황폐화된 것에 대한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치유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이제부터라도 인간의 편리에 의해 재앙을 부르지 않는

개발을 하자는 뜻입니다.

어찌 보면 참 그럴싸한 이야기입니다.

사용할 때는 제멋대로 편리하게 사용해 놓고 문제가 생기니까

그만한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슬그머니 물러서는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 번 오염되고 황폐화된 땅과 하늘이 슬그머니 물러서서

물신의 숭배 형태만 바꾼 인간을 그냥 놔둘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천지만물의 조화를 깨트려 놓은 인간에게

자연은 교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자꾸 던져주지만 그것을 무시한 채

마냥 소모시켜도 되는 도구로만 자연을 인식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하지도 않았고,

소중한 인격체 이상으로 자연을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란 그저 편리하게 사용하고

내다버리는 일회용이 아니라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나가는 노력에 의해 이어지는 것인데도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편리한 소모품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것입니다.

자연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겠노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의 영혼을 향해 던져주던

메시지는 이제 무시무시한 경고로 변해버렸습니다.

여태까지 지구 역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상고온 현상과 이상저온 현상이 연속되는가 하면,

동식물의 개체군이 급격히 사라지거나 멸종하는 등

지구 변화의 이상 징후들은 전지구적으로

엄청난 재앙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지구 멸망의 날도 멀지 않았다는

미래학자들의 예견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터무니없다고 무시하기에는 직간접으로 증명되는

이상 현상들이 실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멸망의 날에 대해서는

몇몇의 미래학자나 예언자들의 일회성 구호로만 들리는지

우리는 그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혹 우리들 중에 그 심각성을 안다는 사람이 있다 해도

지구에 내린 재앙의 참혹함을 직접 듣고, 보고, 피부로 느끼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긴가민가하며

어디까지나 겉치레에 불과한 동의만 하는 체 할 뿐입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불과 100년 전에 시작된 기계문명의 혁명 이후

거대한 과학 혁명의 물결이 인간세상을 뒤덮으면서

편리하기 이를 데 없는 과학문명의 달콤한 유혹을 팽개치고

원시사회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대인이고 세계인이며,

전 지구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안방에 앉아서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을 금세 알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끼니때가 되면 무쇠 솥에 보리쌀 안쳐놓고

마실가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아낙네들이,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말고 전기밥솥에 전원스위치 켜는

오늘날의 여자들을 보면 요술을 부린다고 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을 기적이라고 한다거나, 더 나아가

신의 조화쯤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100년 전에 지금과 같은

과학의 이야기들을 사용하면서 지구 반대편 이야기를 하거나,

리모컨으로 부채 대신 선풍기를 켰다면

아마 예언자나 선지자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제 신의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까지도 관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천지만물의 조화도 과학기술로 충분히 이룰 수 있다는 환상 때문에

우리는‘인연’이라는 말도 섣불리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하늘ㆍ사람ㆍ땅의 조화에 의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는 인연은

이제 인간의 의지만으로 인연을 다시 만들어내고,

신의 영역에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자만에

한껏 들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화를 깨트려 놓고도 전혀 무안함조차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

자연은 무엇을 돌려주려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재앙입니다.

지구 멸망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몇몇 과학자들의 몫만은 아닌 우리 지구인 모두의 몫인 것입니다.

 

지구의 수명이 다해 가는 징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긴장된 마음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신의 애장품’이라고 말씀하시는

지구는 신의 세계와 똑같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되찾아 올바르게 행사해야 합니다.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가 신의 애장품이자 하나뿐인

지구의 죽음을 맞지 않으려면 황폐화된 지구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지구를 되살리려면 무엇보다도 지구를 황폐화시킨

인간의 정신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가능합니다.

초정밀도를 자랑하는 과학기술의 연장선에서

지구를 살리려는 노력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옵니다.

오직 인간의 맑고 깨끗한 본래의 영혼을 되살리는 것만이

황폐화된 지구를 새롭게 일구는 것입니다.

 

영혼을 되살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그 일은 애초부터 전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되살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경의 대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라고 부정할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영혼은 동경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기 안에 있는 영혼을 동경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는 일입니다.

또 동경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물질도 아닙니다.

영혼을 되살릴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찌들어 왔던 영혼이나 본래의 순수한 영혼도

모두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버렸는지 어렴풋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지구는

새롭게 일구어질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영혼의 본래 모습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지구의 죽음을 알리는

시계바늘도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부터 물신의 세계에 찌들어 있는

영혼을 되살려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맑고 깨끗한 영혼은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대해야 하며,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는 이미 지치고 병들어 있습니다.

그만큼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구 멸망을 예고하는

여러 징후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영혼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지구의 멸망은 커녕 지구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찌들고 혼탁해진 영혼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농부가 밭갈이를 하는 이유는

튼실한 씨앗을 뿌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간의 맑고 깨끗한 영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찌들고 혼탁해진 영혼으로는 결코

지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맑고 깨끗한 영혼들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예비된 일이 ‘지구 밭갈이’입니다.

 

지구 밭갈이는 우리의 현재 삶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자 출발점입니다.

자신을 알고 스스로를 낮추며,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의 표정은 항상 온화합니다.

 

머금은 미소만 봐도 보는 이를 참 편안하게 해 줍니다.

가꾸거나 표정관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청정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겨울에는 따뜻한 난로같이,

여름에는 청량한 음료처럼 느껴지는 그런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새롭게 일구어 나갈

지구 밭갈이에 동참하고자 하는 순수한 뜻을 품은 사람들이

바로 농사에 비유하자면

이듬해 파종 때 쓰일 튼실한 종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튼실한 종자를 보관하려면 흡기와 배기가 잘 되어

병충해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쥐나 들짐승들의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하는 좋은 ‘곳간’이 필요합니다.

이 곳간이 호국인촌입니다.

호국인촌이 자리잡고 있는 자리는 흡기와 배기가 잘 되고

외부로부터의 피해를 차단하는 최적의 길지이며,

동시에 지구 밭갈이를 위해 새로운 기운을 모우는 중심지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배꼽에 해당되는 ‘단전(丹田)’이 있는 곳입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단전은

우리 신체의 배꼽 세 치 아래에 위치한다고 보는데,

사람의 인체가 작은 우주와 같아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합쳐

새로운 힘을 탄생시키는 중심자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지구의 죽음을 막기 위해 수명이 다 되어가는 지구를

새롭게 일구고, 죽음 이후에는 맑고 깨끗한 영혼이 되어

본래의 자리인 영생의 세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예비하여

살아가는 현실세계가 바로 이 단전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호국인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받아들여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호국인과 호국인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호국을 ‘하늘나라’라고 하니까

그 뜻만 가지고 마치 종교나 신앙처럼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에도 상당한 장애가 생깁니다.

한마디로 말해 호국인과 호국인촌은 종교도 아니고 신앙도 아닙니다.

종교나 신앙의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이라든지 영생의 자리라든지 하는 용어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종교 아니면 신앙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른

자연에 대한 무지와 결코 다르지 않는 고정관념이고 편견입니다.

 

현실세계에서 호국인과 호국인촌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뒤집는 것입니다.

돈이나 명예, 그리고 잡다한 세속적인 일에 집착해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종전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족과 재산을 다 팽개치고 영생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신선도를 수련하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가끔 깊은 철학적 사유에 빠져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사회적인 신분이나 명예와도 관계없으며,

직업의 귀천과도 관계없고,

또한 재산의 크고 적음이나 배움의 깊고 얕음과도 관계없이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동안 소비된 물질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다시 채울 수가 있지만 망가지고 흐트러진

영혼은 자신의 노력이나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제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망가지고 흐트러진 영혼으로 계속 물질에 집착하고

여전히 자연을 편리한 도구로만 생각해 무한정 사용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 매여 있기 때문에

지구의 수명을 점점 더 단축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무릇 세상에서 탄생한 것에는 죽음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며, 이미 만들어진 것은 무너지는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멸되지 않는 것이 단 하나 있으니,

그것은 육신ㆍ심신ㆍ정신 중에

정신인 영혼만이 영원히 남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신에 대한 내 영혼의 맑고 깨끗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다하며

자연에 대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더 이상 오염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영혼이 모여 사는 곳이‘호국인촌’이고,

죽음 이후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내 영혼이 예비하고 있는 곳이‘호국인촌’이며,

선생님의 지구 사랑에 대한 보살핌으로 <우산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수명이 다해 가는

지구를 새롭게 일구어 후손들에게 남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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