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신인촌

대지진 그날, 센다이에서는 까마귀가 심하게 울었다

호국영인 2011. 10. 4. 08:11

 

대지진 그날, 센다이에서는 까마귀가 심하게 울었다...

   지진이 끝나자 하늘이 검어진 뒤 눈이 오고

 

 

"3분, 엄밀히 말하면 정확히는 2분 47초였다"
올 3월 11일 일본 동부지역을 뒤흔든 대지진 이야기다.

"사무실 책상이 빙빙 돌고 책상위의 컴퓨터와 책꽃이가 넘어졌어요"

"센다이에 부임한 이래 한번도 책상밑에 숨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책상 아래로 피하게 되더라구요."

김정기 주 센다이 총영사가 전하는 그날 상황인 것이다.

"얼마인지 땅과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하늘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하였고 곧이어 바람이 불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지요."

 "그때 까마귀들이 더욱 심하게 울었고 시내는 구급차 소리로 덮였었요."

이때부터 영사관 직원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잔 사람이 없었다.

"오후 5시쯤 되었나

할머니 한분이 아기가 있는 가족을 데리고 영사관으로 왔지요."

지진이후 센다이 시내 대부분이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공급되지 않자 미야기 현청 바로 옆에 있어

그나마 전기가 들어왔던 센다이 총영사관이 교민들의 피난처가 된것이다.

"우선 영사관저에 있던 이불을 가져다 할머니 가족에게 제공하였고"

김 정기 총영사의 말이다.

영사관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다른 가게는 모두 문을 열지 않았는데

영사관 주변의 한 편의점만 문을 열었다.

직원들이 줄을 서도록 하였는데

한참만에 가져온 것은 냉동스파게티 20여개뿐.

 

그 시간 이후 유학생과 교민을 포함하여 하루 200명 정도가 영사관에서

먹고 자고 하였으며, 지진 기간을 모두 합하면 모두 2천명 정도가되었다.

먹는게 제일 문제였다.

당초 영사관은 사람들이 거기서 먹고잘 것을 예상하고 지어진게 아니었다.

다행히 식당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재일동포가 프로판 가스와 스토브 2개, 솥을 아키타로부터 차에 싣고

영사관으로 오면서부터 그나마 밥과 국을 먹을 수 있었다.

김 정기 총영사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재외 공관의 기능이 달라지게 되었다"

면서 "공관들이 제는 종합과 대응기능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하였다.

특히 지진 피해가 생길 수 있는 지역의 공관은

더욱 많은 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이번 동일본 대지진이 가르쳐 줬다고

김 총영사는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   호국인 촌의 그분은 살아가는데

      기본이 안전주의고 그리고 앞을 내다보시니까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게 예상을 하시고 계시기에 

      집을 짓더라도 수돗물외에 지하수를 파서

      수돗물이 나오지않을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주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호국인 촌 그분 같이 일본의 영사관저를 만들때

      사람들이 기거 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지진이 일어났을때 

      센다이에 살고있는 우리나라 교포들이

      고생을 덜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그자체도 

      생각없이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무심에서 벗어나

      세상의 밭갈이가 벌어지기전에

      자신의 길을 찾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센다이같이 된다고 가정을 하였을때

      우리는 어떻게 할지를 한번 생각 했으면 하고

      우리는 그것을 대비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