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에 뜯긴 땅에도 생명은 내려 앉는다
[경향신문]
몇 해 전 어깨 수술을 했다. 담당 의사는 회전근이 심각하게 손상됐으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 상태라면 재활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했다는 것을 몇 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제대로 된 진단 없이 근육을 도려낸 내 어깨는 아직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제주도와 개발론자들은 사람들 이동시간이 몇 분 줄어든다는 이유로 제주도 비자림로의 삼나무숲을 칼에 잘린 도화지처럼 기계로 반듯하게 뜯어냈다.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도려내다 숲에서 천연기념물 멸종위기 2급 팔색조와 두견, 멸종위기 2급 긴꼬리딱새, 애기뿔소똥구리, 맹꽁이, 두점박이사슴벌레 등이 발견되고 나서야 톱질을 멈췄다. 뜯겨진 숲은 펜스가 쳐진 공터로 남았다.
공사가 중단된 지 약 3개월. 비자림로 숲길을 찾았다. 잘린 나무의 밑동만 가득하던 곳에는 새 생명들이 움트고 있었다. 뿌리가 뽑혀 죽은 고목을 하늘타리가 감쌌고, 깨풀과 마가 삐죽이 머리를 내밀며 자라나고 있었다. 마르고 갈라진 땅 사이엔 어린 삼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뜯겨진 땅에도 생명은 내려앉고 있다.
제주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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