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서울미술기행]
한국이 너무 좋아 평생 한국만 그린 일본화가
▲ 일제강점기 경성 모습. 조선총독부 왼쪽이 서촌. |
ⓒ 황정수 |
서촌은 본래 조선시대 때부터 실용적 계층인 중인 계급들이 살던 곳이라 현실적인 일본인들의 취향과도 맞았다. 더욱이 이곳에 이완용, 윤덕영 등 나라를 잃게 한 대표적인 매국 친일 인물들이 호화롭게 살아 마치 친일 인사들의 마을 같은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일본인들이 서촌에 모여들었다. 그렇다 보니 다른 부작용이 생겼다. 일본인들이 모여들자 이곳에 살던 한국인들 중에 경제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은 점차 밀려나는 상황이 되었다. 요즘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다.
서촌에 들어와 살게 된 일본인 중에 화가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근처에 있는 학교의 교사로 일을 하였으며, 일부는 본격적인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다른 지역에 사는 일본인 화가들 중에도 문화적 분위기가 강한 이곳에 드나들며 활동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일제강점기 서촌은 화가들의 동네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많은 한국인 화가들이 서촌 지역에 살았다. 당시 일본인 화가들과 한국인 화가들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만은 않았다. 이들은 미술이라는 감성적인 매체를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며 가까이 지냈다.
일본인 화가들은 서촌뿐만 아니라 북촌이나 인사동, 정동 지역 등 주로 경성 중심부에서 살며 활동하였다. 이들은 시내 중심부에서 거주하며 활동하였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오래된 풍경을 좋아하여 경성, 경주, 수원, 평양, 개성 등 고도를 많이 찾았고, 자연 경관 중에서는 유독 금강산을 많이 찾았다. 경성 근처에서는 특히 북한산, 인왕산 등을 좋아했다. 봄이 되면 꽃을 감상하기 위해 북한산이나 인왕산에 많이 올랐다. 특히 인왕산은 가깝기도 하려니와 서촌 지역에 일본인이 많아 더욱 자주 찾았다.
▲ 시미즈 도운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 |
ⓒ 서울옥션 |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은 일본인 화가 중에 일찍 경성에 자리 잡은 화가였는데, 덕수궁 뒤 정동에 살며 일본인 화가들의 좌장 역할을 하였다. 그는 사진관과 화숙을 경영하며 제자를 가르치고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점차 그의 제자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화가들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초상화를 매우 잘 그렸으며, 화조나 풍속화에도 능했다. 천도교의 1, 2대 교주인 최제우와 최시형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 남아 있으며, 두 사람의 처형 장면을 그린 작품도 남아 있다.
이 중 <최제우 참형도>와 <최시형 참형도>는 한국인의 자주적 행동이 실패하였음을 보여주는 가슴 아픈 작품이다. 더욱이 우리의 쓰라린 기억을 한국인 화가의 손이 아닌 일본인 화가의 손으로 그려졌다는 사실도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억울한 일이다. 이 작품이 그동안 오랫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숨겨져 있었던 것도 이러한 사실이 부끄러워 떼어져 처박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선 도자기의 신'이라 불린 아사카와 노리타가
▲ 아사카와 노리타가 <경성풍경도> |
ⓒ 황정수 |
아사카와 노리타가 그린 수묵화 중 <경성풍경도>는 당시 경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을 때의 모습으로, 숭례문 쪽에서 백악산을 바라다보며 그린 것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백악산이고, 그 밑에 있는 각진 건물은 조선총독부이다. 총독부 앞 두 개의 기둥에 걸려 있는 깃발이 조선물산공진회가 열리던 시기의 어느 날을 그린 것임을 알게 한다.
큰길을 내닫는 트럭과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의 모습, 길가의 바쁜 듯한 인물의 묘사에서 분주한 경성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건물들을 과감히 생략한 구도와 역동적인 빠른 필선이 돋보인다. 빠른 필선이 도시의 활력을 율동감 있게 잘 표현하였다. 곡선으로 표현한 큰길과 대충 둥근 선으로 빠르게 그리고, 문지르듯 번짐을 이용한 담묵 처리는 산뜻한 재기를 보여준다.
평생 한국 풍경을 그린 가토 쇼린
가토 쇼린(加藤松林)이란 화가는 참으로 한국을 좋아했던 화가이다. 그는 시미즈 도운의 제자 중 수제자로 불리는데,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그림을 배웠다. 그는 장충동에 거주하며 사업을 하였으나, 그림을 배운 후에는 주로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너무도 한국을 좋아하여 평생토록 한국의 유적이나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만을 그렸다.
▲ 가토 쇼린 <인왕산 풍경> |
ⓒ 황정수 |
경성에 있을 때에는 때때로 도성(都城) 부근을 자주 돌아다니며 사생을 하였다. 봄이 되면 특히 세검정 조지서 근처에 자주 놀러갔으며, 또 북한산에도 자주 올라 복사꽃 핀 봄 풍경을 그리기도 하였다. 또한 인왕산에도 자주 올라 자연을 감상하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가 인왕산을 그린 부채 그림 <인왕산 풍경> 한 점이 전한다.
<인왕산 풍경>은 담채로 희미하게 그린 것이 마치 비라도 내린 후 산의 깨끗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먹을 아껴 쓴 필법이 상당히 감각적이고, 몰골법(沒骨法, 윤곽선 없이 그리는 법)으로 그린 선염법이 일본화지만 서양화가들의 수채화처럼 보이게 한다. 인왕산은 바위로 된 암산으로 자주 그림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정선(鄭敾)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에서 굳건한 인왕산의 모습을 강인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정선의 그림에 비해 가토 쇼린은 섬세한 필치와 간결한 필획으로 인왕산을 묘사하였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일어났던 신남화풍의 화풍을 보여주는 것이다.
▲ 가토 쇼린 <봄날의 북한산>, 이한복·이마무라 운레이 <향원익청> |
ⓒ 황정수 |
이마무라 운레이(今村雲嶺)라는 화가도 시미즈 도운의 제자였는데, 당시 계동에 있었던 용곡여학교 교사였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수상을 하는 등 작가로서 제법 많은 활동을 하였다. 한국인 화가로는 서촌 궁정동에 살던 진명여학교 교사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과 가까이 지냈다. 두 사람은 이한복의 집 대악루(對岳樓)에서 자주 만나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한 번은 만나 술을 마시다 함께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 그린 <향원익청(香遠益淸)> 실물이 전한다.
이마무라 운레이는 연꽃을 그리고, 이한복은 오창석의 필의를 담은 글씨로 화제를 썼다. 연꽃 줄기의 휘어져 올라가는 품새가 유연하고, 글씨 획의 얽매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부드럽다. 연꽃은 가녀린 줄기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힘을 강약을 능란하게 조절한 글씨도 하얀 종이 위에서 춤을 춘다. 어디선가 선율 고운 대금 소리라도 들려 올 듯하다. 그림은 왼편으로 배치하고 글씨는 오른 편으로 한 구성도 멋들어진다.
여행 와서 세검정을 그린 야스다 한포
▲ 야스다 한포 <세검정 설후> |
ⓒ 황정수 |
흑백의 극단적인 대비와 단청의 감각적인 채색 등 표현 방식 또한 전형적인 일본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너무나 감각적이어서 오히려 한국의 세검정 같지 않은 '낯설음'이 느껴지지만, 기교적인 면에서는 어느 한군데 흐트러짐이 없는 솜씨와 격을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 가옥과 달리 처마가 들리고 잘 빠진 기둥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작가가 일본인임을 느끼게 한다.
▲ 현재의 세검정 모습 |
ⓒ 황정수 |
필자는 며칠 전 성문 밖을 나간 김에 세검정을 찾았다. 지난 날 우리나라의 문인들이나 화가들이 좋아하였던 마음을 공감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성 밖이라 한적하였던 이곳은 이제 도심으로 편입되어 예전의 정취는 느낄 수 없었다. 본래 세검정은 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봄놀이 장소인 '탕춘대(蕩春臺)'의 아름다운 풍경과 잘 어울려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자 옆으로 도로가 지나가 자동차 소리로 시끄럽고, 주변 산자락으로 집들이 들어차 자연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만한 조건이 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새로 정비한 주변 환경이 문화적 시설이라기에는 격조가 없어 과거 세검정의 명성을 뒷받침 할 만하지 못하였다. 아쉬운 마음에 정자 아래 물가의 너럭바위로 내려가 앉아 잠시 침잠하여 옛적 모습을 생각하니 그나마 예전 분들의 흥취를 조금이나마 미루어 짐작할 만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도로를 만들며 두 조각으로 잘린 탕춘대 능선을 보자니 자연유산의 보존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왜 우리는 늘 잃고 난 다음에 후회할까 하는 자책이 깊숙한 곳에서 불끈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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