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의 일본어판 원본은 직접 본 적이 있나?
"일본어판도 대마도가 일본 땅이라는 필사본만 돌아다닌다. 일본 도쿄의 국립도서관에 원본이 보관돼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하야시가 제작한 다른 지도 '조선팔도지도'의 원본은 발견했다<지도②>. 그의 고향인 센다이 소재 도호쿠(東北)대학 박물관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냈다. 대학 측이 '원본'이라고 소개해놓았다. 그 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령으로 나와있었다. 내가 이런 자료를 근거로 2010년 말 논문을 발표하자, 한 달도 안 돼 인터넷에 떠 있던 지도가 사라졌다. 그 공간을 '노 이미지(사진 없음)'로 비워놓았다."
―대마도 영유권보다, 현역 군인이 어떻게 해서 대마도에 빠져들게 됐는지가 더 궁금하다.
"2008년 초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연수할 때였다. 뉴욕타임스에 김장훈씨가 낸 독도 광고를 봤다. 민간인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현역 군인으로서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지워싱턴 대학은 이승만 대통령이 다녔고, 이분이 정부 수립 후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떤 근거로 그랬는지 찾아내고 싶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사흘 뒤 첫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연두 회견과 연말 회견에서도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일본인이 아무리 주장해도 역사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압박에 일본 총리가 일왕(日王)에게 '한국인이 실제 2000명쯤 거주하고 있다'는 대마도 상황까지 보고했다. 하지만 여섯 달 뒤 6·25가 발발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무엇을 찾아냈나?
"조지워싱턴대 도서관 7층 특수문서실에서 그의 1907년 졸업 앨범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같은 과 동문들이 '그에게 국적을 물을 때 실수하지 말라. 그는 우리 가운데 성적이 가장 우수하여 전 과목 A·B 학점을 받아 2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다. 그는 YMCA와 역사·철학 등의 찬반 토론회에서 주요 멤버였다'는 글을 적어놓았다. 이분이 대학에서 역사학 두 과목을 이수했고, 그 뒤 하버드대(석사)와 프린스턴대(박사)에서도 역사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와 어떻게 연결되나?
"이분이 미국 체류 시절 쓴 '저팬 인사이드 아웃(1941년)'을 봤다. 진주만 기습 7개월 전에 이미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했다. 그 책에는 '일본과 한국 사이, 한국과 만주 사이 등에 경계선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일본이 이런 과거의 경계선을 하나둘씩 깨뜨리면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분은 사실적 근거를 갖고 '과거의 경계선이 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대마도 영유권'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본다."
―당신은 그전에 이 분야를 전공하거나 공부한 적이 있었나?
"전혀. 다만 그런 관심이 생기면서 미국의 한 고미술·지도 전시회에서 1864년 발행된 아시아 지도를 사게 됐다. 지도 하단에 '미국 페리 함대의 일본 현지 정찰과 측량으로 작성했다. 일본과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미 의회의 지시로 미국 정부에서 제작했다'고 나온다. 이 지도에는 대한해협이 현재의 위치가 아닌 대마도 남단에 있었다. 일본 영토에는 채색이 되어있었지만 대마도는 우리 땅과 똑같이 무색이었다. 그게 첫 단서였다."
―당시 미국으로서는 동양의 어느 나라에 어떤 섬이 소속됐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 않은가?
"페리 함대는 앞서 말한 '오가사와라'를 놓고 일본과 영토 분쟁을 했던 당사자다. 그때 일본이 하야시의 프랑스어판 지도를 제시해 협상에서 이겼다. 이를 근거로 미국 정부에서 제작한 지도였다. 그러니 대마도가 어느 영토에 속하는 지를 알았을 것이다."
―지도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유추하고 있지 않나?
"1855년 영국에서 제작된 지도에는 일본 각 지방을 구역별로 번호를 매겨놓았다. 그 지도의 하단에 '대마도와 이끼섬은 일본 왕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1945년 국내에서 발행된 '조선해방기념판 최신 조선전도'에도 대마도를 우리 땅으로 표기해놓았다."
―하지만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미국 등 전승국 간에 전후 처리를 위해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년)을 체결했다. 이 문안에 '독도'와 '대마도'는 명시되지 않았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도 날아갔던 셈이다.
"우리는 '전승국' 신분이 아니어서 협상에 참여할 수 없었다. 또 6·25전쟁 중이었다. 외교적 제약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1952년 독도를 포함하는 '평화선'을 설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마도를 염두에 두고서 '이 경계선은 장래에 규명될 새로운 발견·연구 또는 권익의 출현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신정세에 맞추어 수정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고 했다."
―대마도 영유권 주장은 정말 현실성이 있다고 보나?
"당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오가사와라' 섬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일본의 집요한 요구로 1968년 뒤집혔다. 미국이 과거의 합의를 받아들여 그 섬을 일본에 반환한 것이다. 당시 영토 협상의 기준이 됐던 지도에 의한다면 대마도 영유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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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것도 찾아 갖지를 못하는 것은 윗분들의 눈치보느라
자신들의 할일을 소신 것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중국에서는 일본 정부의 댜오위다오 국유화에 항의하는 중국
시위대가 일본 기업에 대한 폭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문제삼아도 아무소리를 못하더니만
화폐에 독도를 넣으면 세게에서 통용이 될수가 있으니까
거금드려 광고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일본과 싸울 필요조차
없으며 대마도도 우리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따지고 들어 간다면 우리것을 왜 빼앗길까요.
내 나라 것은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