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소개방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의 시골의사, 박경철

호국영인 2011. 8. 29. 06:41

 

[일요인터뷰]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의 시골의사, 박경철

 


[뉴스투데이]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요인터뷰 오늘 초대손님은 재야의 인사입니다.
요즘은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하고 있는데 반응이 아주 뜨겁습니다.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의 시골의사 박경철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본업이 의사죠.
그런데 요새 방송 강연회도 바쁘신 것 같은데 하루일과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는 게 있어서 보통 5시 반쯤 아침 눈을 뜨면

1시간 정도 외신을 검토하 7시부터 9시까지 방송을 하고 9

시 반부터 강연이나 아니면

기타 관계되는 본업을 벗어난 쓸데없는 일들이 이어져 있는 편입니다. 

그러면 방송, 강연, 의사 현재 상태에서 본인의 정체성이랄까요,

직업이라고 할까요, 정체성이 뭡니까? 

정체성 혼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제가 아마 직업적 가치 입장에서 보면 의사로서 현장을 지키는 것이

가장 합당한 일 것 같은데 제가 조금 더 쓰임새 있는 일,

조금 더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 이러다 보니까

좌충우돌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죠.
안철수 교수와 함께하고 있는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 

처음에는 이게 지방대 기살려주기 프로젝트였다면서요.

어떻게 기획을 하셨습니까, 처음에?

처음에는 3년 전에 안철수 교수가 이화여대 강연에

저하고 같이 대담형식으로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기에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선배시기도 하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러십시다

하고 가서 현장에서 대담강연을 했었어요.

처음이었죠.
그런데 이게 2000명 학생들 앞에서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는 게 어떤 반응일까 의구심도 있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현장에서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선생님한테 즉흥적으로 제안을 했어요.

이런 기회를 이번에 학생들도 공이 있으니까

서울지방 말고 다른 지방 학생들한테 가서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이번에 안 선생님이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즉답으로 그렇게 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씩

전국 지방대학을 다니면서 같은 형태의 강연을 해 왔는데.

왜 콘서트라는 말을 썼어요?콘서트라는 말을 쓰셨어요?

강연만이 아니고 거기는 자원봉사자분들이 와서 콘서트도 하고

저희 두 사람이 하는 말은 머릿속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한적이고

동어 반복될 수밖에 없으니까 한국사회의 좋은 역량을 갖춘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하다라고 생각하는 멘토들이나 구루들을 모시고 가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저희들이 이번에는 진행자가 되어서 끌어내고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드리는 복합적인 행사가 되다 보니까

노래도 부르고 이렇게 해서 이름이 콘서트가 됐습니다. 

일종의 축제 비슷한 그런 거군요. 

그래서 그런가요.
강연이 5분도 안 돼서 매진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뜨거운 반응 그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마 위로라는 키워드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세대는 선배들로부터 좋은 기회를 물려받아서

지금 각자 역할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 후배 세대들에게 좋은 바통을 넘겨주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혼자서 이 문제를 풀어라 하지 말고

그런 바통을 넘겨준 우리가 최소한 미안함의 바탕 위에서

같이 해법을 찾아보고 고민을 해 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공감력에 대한 어떤 긍정,

이런 부분이 작동해서 그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존 놀스의 정의론을 보면 누군가 칼을 들고 케이크를 잘랐다면

마지막 사람이 조각을 가지는 것이 정의다.

이것은 어떤 얘기냐면 한국사회를 기회와 질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최소한 그 질서의 수혜자가 되었으면 정의가 아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청문회 현장에서 드러나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때에 따라서 국가 질서를 외치지만 국가 질서를 앞장서서

어겨가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좌절하죠.

정의가 아니다.
이런 정의가 아닌 사회에서 청년들이 깊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이 많이 가슴속에 어려움을 쌓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 대기업들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어쨌든 정글과 같은

세계시장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것 아니냐.

그것에 대한 비판만 할 수 있겠느냐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무결점주의, 무우려주의는 공산당입니다.

대기업의 오늘의 성장 뒤에는 IMF 때부터 시작해서

국가사회의 모든 지원들이 이루어져서 오늘이 온 것이라면 뒤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이만큼 오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지 못했고

때에 따라서는 짓밟고 지나쳐왔다면 때에 따라서는

조금 부도덕한 면이 있다면 돌아서서 미안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하고 어깨를 내밀었다면 존경받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격려도 있을 수 있고 비판도 있을 수 있으나

최소한의 균형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공교롭게 지난 며칠 전에 프랑스에서도 같은 선언이 있었습니다.

16개 CEO 및 우리 식으로 치면 재벌 2세,

이런 분들이 모여서 우리는 조국 프랑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가사회가 현재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것에 대해서 부담과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해 달라,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참 프랑스인다운 수사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굉장히 감동적인 멘트들이었죠.

IMF를 겪거나 혹은 카드대란을 겪으나 때에 따라서는

금융위기를 겪으나 위기가 닥치면 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어렵다. 지원해 달라.
건강한 자본주의, 건강한 시장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가 개선 이런 부분들이 이루어져야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건강한 비판의 필요성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년이 총선과 대선의 계절인데

공천심사위원으로도 참여를 해 보신 적이 있고요.

정치권에서는 탐낼 만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지금 그런 생각 없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깃발이 되고자 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무엇이냐 하면

그 깃발이 높이 매달려서 펄럭이게 할 수 있는

좋은 깃대가 누군가는 돼야 됩니다.

하지만 또 아무리 좋은 깃발과 깃대도 튼튼한 토대 위에 서지 못하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지난번 국회의원 공천심사를 시민자격으로 가서 해본 적이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현안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보니까

요즘 발견하게 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300명의 의원 중에 한 분이 입법을 하시는 권능보다

300명 의원 전체가 그런 입법을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 훨씬 더 큰 힘을 가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까 정치 안 하신다라는 말로 정리가 되는 겁니까, 당장?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런 조언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네버 세이 네버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지금 현재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100% 솔직히 얘기해라 하면 좋은 깃발이 아니라 좋은 깃대,

그 역할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지금 현재는 확실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제동 씨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진심이 담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저보다 10살이나 어린데

나는 저 나이 때 과연 저런 정도의 공감력을 가지고 살았던가.
때에 따라서는 부끄럽고 성찰을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안철수 선생님 보면서 느끼는 점은 저분이 어떻게 한 사람이

오십을 넘기면서 살아가면서 언행일치,

어떻게 자기가 한 말을 그대로 저렇게 서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연결되어 있죠.

왜냐하면 공감에서 나온 말을 했을 때만 그 말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두 분이 비슷하고요.

제가 그 중간에서 끼어서 양쪽으로 다 부족하지만

양쪽으로부터 좋은 영향, 즉 선한 영향을 받으면서

제 자신을 교정하고 개과천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 어느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사람이 없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