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엔 비 뚝뚝, 더위엔 땀 뚝뚝...
포항 1평 텐트선 잠들 수 없었다
기자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1일까지 7박 8일간 체육관에서 이재민과 동숙(同宿)했다. 체육관 등록 이재민은 208명이다. 실제론 30여 명이 거주한다. 나머지 170여 명은 부모나 친척집 등을 떠돈다. 포항 지진 1년 8개월째, 이재민 30여 명은 체육관에서 두 번째 장마, 두 번째 더위와 맞닥뜨렸다.
◇두 번째 더위와 장마로 악전고투
"돼지우리 같아 처음엔 참 비참했어요." 지난달 24일 이재민 최경순(64)씨가 텐트에 입주하는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키 171㎝ 기자는 체육관 2층 17번 텐트에 기어들어가 짐을 부렸다. 일주일 치 옷과 세면도구, 가방 두 개를 풀고 모로 누우니 3.15㎡(0.9평)가 꽉 찼다. 0.9평 텐트는 체육관 1층 180개, 2층 41개 등 총 221개 놓여 있다.
반팔·반바지 차림인데도 텐트에 있으니 10분 만에 땀이 맺혔다. 체육관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으나 찬 바람이 돌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았다. 2층에서 지내는 신순옥(68)씨는 "7~8월엔 텐트가 찜통"이라고 했다. 이날 2층에서 자던 9명 중 2명은 새벽에 잠이 깨 1층의 빈 텐트로 옮겨갔다. 2명 중엔 '대프리카' 대구 출신으로 더위에 단련된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대피소의 하루는 오전 6시 시작된다. 텐트에서 일어나 출근길에 나서는 이재민은 30여 명 중 10여 명이다. 이들에게 일거리는 대피소 생활의 답답함과 우울함을 잊는 치료제다. 최우득(80)씨는 매일 아침 폐지를 줍는다. 1㎞쯤 떨어진 흥해읍내까지 나가 10㎏을 모아 고물상에 팔고 6000원을 받는다. 최씨는 "자식들에게 손 내밀지 않을 수 있는 폐지 줍기가 지진 우울증 치료약"이라고 말했다. 김형철(64)씨 등 2명은 45세 이상 퇴직자 대상 사업인 '중장년취업아카데미'에 지원서를 내고 행사 상품인 라면 2개를 받아왔다. 김씨는 "나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대피소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대피소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는 부부도 있었다. 교도관으로 일하는 김종덕(51)씨는 최근 붓글씨에 취미를 붙였다. 커피 캔을 잘라 연적을 삼고 이면지에 글을 쓴다. 출근하기 전 아내 임혜경(50)씨에게 글을 남긴다. 붓으로 '해가 지거든 돌아오마'라고 쓰고 해를 그려 넣는다. 아내 임씨는 김씨의 퇴근이 늦으면 종이 뒷면에 '해는 졌는데 언제 돌아오시려나'라고 답가(答歌)를 쓴다. 김씨는 "부부가 글로 소통하는 건 집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라고 했다. 신순옥(68)씨는 어항 3개에 열대어 30마리를 키운다. 신씨는 "지진 때문에 집에서 기르던 물고기를 모두 잃었다"며 "그 아이들의 새끼를 키우는 심정으로 기른다"고 했다.
포항 지진 이재민 2390명 중 2030명(85%)이 임대아파트 등 임시 주택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360명은 피해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얻지 못해 체육관과 컨테이너 숙소 등에 흩어져 산다. 체육관 이재민은 북구 흥해읍의 한미장관맨션 주민이 많다. 한미장관맨션은 작년 6월 포항시 정밀 안전점검 결과 소파(小破) 판정을 받았다. 건물 주요부가 50% 미만 파손된 경우다. 재난 지원금 100만원만 지급된다. 한미장관맨션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김홍제(60)씨는 "사람으로 치면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망가졌는데 반창고만 붙이고 재활하라는 판정"이라고 했다. 지난달 25일 찾아가본 한미장관맨션 가동 213호는 지진 이후 불어닥친 태풍과 폭우로 주방 쪽 천장이 통째로 뜯어져 나가 있었다. 이재민이 된 아파트 경비원 윤성일(69)씨는 "가나다라 4개 동 중 나동은 지반이 내려앉아 아파트 모서리 밑으로 손이 들어간다"며 건물 아래로 손바닥을 넣어 보였다. 윤씨가 손을 넣은 나동 건물 오른쪽 상단 모서리는 지면에서 7㎝가량 띄워져 있었다.
◇비 새지 않는 평범한 집이 소원
이 때문에 이재민 155명은 포항시를 상대로 재난 지원금 상향 조정 소송을 제기했다. 1980년대 정해진 건축 구조 기준에 따라 2017년 지진 피해를 산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판정 기준을 조정해 지원금을 올리고 대체 주거지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재판부는 청구를 기각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포항시 추산이 맞는다는 이유다. 기각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민들은 체육관 입구에서 말없이 줄담배를 피우거나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포항시는 이재민 피해를 일괄 지원할 수 있는 '포항지진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침 이 법을 처리하는 국회가 지난달 28일, 84일 만에 정상화 길에 들어섰다. 기자가 체육관 대피소를 떠나던 지난 1일 이순오(73)씨는 기자의 손을 잡으며 "정이 들어서 우짜노. 우리랑 여기서 같이 살자"고 했다. 기자가 "어서 대피소를 나오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씨는 "나가도 갈 곳이 없다"며 잡았던 손을 힘없이 놓았다. "비바람 안 새는 집에서 살고 싶을 뿐인데, 내 살아 있을 때 그기 되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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