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이 왜 죽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지만, 눈은 도무지 떠지질 않았다. 계속되는 소음에 겨우 곁눈질을 하니 아내였다. 여름 습기를 잡겠다며 사온 제습제를 뜯고 있었다. 소파에 기절해 있던 난, 차마 방으로 들어갈 힘도 안 났다. 소릴 줄이려고 얇은 낮잠 담요 하나를 얼굴에 무심히 뒤집어썼다. 그리고 힘겹게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축 늘어진 팔과 다리엔 피로가 무겁게 얹혀 있었다. '아직 저녁인데, 운동가야 하는데.' 생각은 그저 생각 뿐.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날 자정쯤 눈을 떠 물 한 잔 마시고, 급한 용무를 해결한 뒤 다시 누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잠들었다.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어떻게 그리 보낼까.'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버스 창에 좀비처럼 머리를 기댄 채 또 생각했다. '이미 출근해서 택배 분류 작업이 한창이겠구나.' 광화문에 도착해선 또 그런 상상을 했다. '이제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을 시작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회사 앞 광화문 우체국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시원하게 출발하는 이들을 봤다. 매일 코앞에 있었던 풍경인데, 눈에 들어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헬멧을 쓴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응원했다. 오늘은 많이 안 더웠으면 좋겠다고.
짐작했겠지만 '집배원'들 이야기가 맞다(제목에 써놓고선). 그리고 그들이 사는 하루를, 나도 보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과로사(過勞死), 의미 그대로 과중한 업무로 숨지는 일. 지난 10년간 숨진 집배원만 348명이란다. 꾹꾹 참던 이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파업을 한단다. 그 이면을 세밀히 들여다봐야 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주로 퇴근길 저녁에 우편함에서 쉽게 집어 드는 이 편지 한 통, 그리고 안전하게 집 앞까지 오는 등기며 택배는 대체 어떻게 오는 것일까. 그걸 직접 해보면 해답을 알 거라 여겼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날 오전 8시, 구로우체국 3층에 도착하니 이미 출근한 집배원들 손길이 분주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이들은, 보통 오전 7시20분에서 40분 사이엔 다 출근한단다. 등기는 노란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택배는 빨갛고 파란 철제 카트에 지역별로, 집배원별로 착착 분류가 됐다. 공중을 쉴 새 없이 가르는 택배들을 보니 심장이 괜스레 쿵쿵 뛰었다. 일반 우편물은 기계가 한 번 분류해주고, 그걸 다시 집배원들이 정리한다.
전쟁터 같은 현장을 넋 놓고 보고 있다가, 문백남 지부장(전국우정노동조합 서울구로우체국지부)이 건넨 '하늘색 조끼'를 받아들었다. "사이즈가 맞는 줄 모르겠다"며 건넨 조끼는 엑스라지(XL) 사이즈인데 딱 맞았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우체국 상징 ‘제비’ 마크를 보고 정신을 붙잡았다. 그제야 집배원이 된 것처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오늘 함께할 집배원 장재선씨와도 찰나의 순간에, 인사를 빠르게 처음 나눴다. 그에 관해선 "아들이 갓 돌이 지났어요"란 설명 정도만 들었다. 뭘 하고 있는지 묻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빠르게 걸어야 했다. 그의 발걸음이 그랬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처럼, 긴박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기사 쓸 게 떨어지고, 마감 시간도 정해졌을 때, 정신없이 기사를 쓰는 기분과 비슷했다. '시간이 충분치 않구나', 벌써 짐작이 갔다.
배달을 나가기 전 하는 일도 같은 맥락이었다. 빠듯한 배달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많은 걸 빠르게 배달해야 하니까. 하루 배달 물량이 일반 우편 1000통, 등기 100통, 택배 50통인데, 이걸 움직이는 동선에 맞게 미리 정리를 한단다. 상상이 되는가.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를 이미 훤히 꿰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 맞는 우편물과 등기, 택배를 사전에 다 정리를 한다니. 이유가 있단다. 일반 우편물은 2초, 등기는 28초, 택배는 30초 안에 배달해야 한다고. 그 시간을 기준으로 물량을 할당하는 거라고 했다. 배달을 나가기도 전에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것처럼 숨이 가빴다.
장씨도 무척 분주했다. 주소만 보고도 여기서 저기로 택배를 놓고, 저기서 여기로 등기를 옮겨 고무줄로 묶고, 착착 정리했다. "주소만 봐도 어딘지 다 아는 거 아니냐"고 묻자 장씨는 웃으며 맞다고 했다. 배달 지역인 금천구 독산동만 2년 가까이 발로 뛰어다녔던 그에겐, 이미 '머릿속 지도'가 다 있었다. 얼마나 하면 그렇게 되느냐 물으니 "3개월 정도면 감이 잡힌다"고 했다. 난 감히 끼지도 못한 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다 실으면 우편물 무게가 통상 20~40kg 정도. 여기에 배달통 무게가 5kg 남짓이라 하니 총 25~45kg 정도 된다고 했다. 그걸 싣고 오토바이로 달린다니, 어떤 느낌일지 예상이 됐다. 그래서 장씨는 "비오는 날과 눈 오는 날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비오는 날엔 우비를 입고 달리는 와중에 우편물이 안 젖도록 신경 써야 하고, 눈 오는 날은 살얼음에 미끄러지기라도 해서 한쪽 발이 깔리면 십자(十) 인대가 나가기도 한다고.
구로우체국에서 장씨가 배달하는 지역인 금천구 독산동까지(8km, 30분 남짓한 거리) 가야했다.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다 싣고 나니, 어떻게 갈지가 문제였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장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 되니, 내가 문제였다. 나도 오토바이를 타겠다고 하니 문 지부장이 걱정스레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괜찮다 했더니 "오토바이를 타본 적 있느냐"고 해서 "없다"고 했더니 위험하단다. 재차 말리는 얘기에 잠시 두려워졌다가, "그래도 집배원 분들하고 똑같이 다녀봐야 제대로 안다"고 오토바이를 고집했다.
그러니 문 지부장이 "구로에서 금천까지 가는 건 장거리라 위험하다"며 말렸다. 그래서 구로우체국 차로 배달지역까지 간 뒤, 거기서 오토바이를 타고 장씨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장씨에게 금천우체국에서 잠시 뒤 만나자고 한 뒤 인사를 했다. 25kg이 넘는 배달통을 오토바이에 싣고 고생하며 갈, 그에게 미안했다. 차를 타고 가며 중간 중간 우체국 배달 오토바이를 봤다. 출근길 정체에 차와 차 사이를 뚫으며 고군분투하며 달리고 있었다.
배달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동하는 걸로도 이미 진이 다 빠질 것 같았다. 집배원들이 아침마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건, 금천구엔 우편 총국이 없기 때문. 구로우체국이 구로구 뿐 아니라 금천구까지, 배달지역 두 곳을 맡고 있다. 그런 우체국들이 광진우체국, 구로우체국 등 서울에 총 세 곳이 있단다. 우편 물량이 많지 않은 자치구를 묶어 배달하도록 한 것. 그래서 일부 집배원들은 한 자치구에서 다른 자치구까지, 매일 배달통에 우편 물량을 잔뜩 싣고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비용이 줄어들면, 집배원들 땀이 늘어나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갔다.
금천우체국 주차장에서 오토바이 주행 연습을 간단히 했다(면허는 있음). 뭣 모르고 무식하게 오른손잡이에 있는 엑셀을 확 당겼다가 '부아앙' 굉음과 함께 폭주족이 될 뻔 했다. 문 지부장이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다가왔다(죄송). 그는 친절하게 오토바이를 세우는 법, 브레이크 잡는 법, 기어 바꾸는 법, 시동을 켜고 끄는 법 등을 알려줬다. 10분 남짓한 시간에 빠르게 배웠다. 더는 장씨의 배달을 지체할 수가 없었기에.
배달의 속도감(感)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장씨는 일반 우편물을 우편함에 꽂는 것부터 시작했다. 도통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를 뒤쫓아 갔는데, 그는 눈썹이 휘날리게 빨랐다.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내가 쫓아가긴 했지만). 부지런히 뒤따라가서 오토바이를 겨우 세울라치면, 장씨는 이미 그 건물 우편함에 일반 우편물을 다 꽂아 넣고 나오고 있었다. 내 오토바이 시동을 끄는 순간, 배달이 끝나 있었다. 그 정도 속도였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인데.
30분 정도 타서 오토바이에 겨우 적응이 되니, 비슷하게 따라가 멈출 수 있었다. 장씨가 "오토바이를 처음 타는 게 맞느냐"며 "잘 타는 것 같다"고 칭찬해줬다. 그래서 맞다고 하며 '펜보단, 이쪽에 재능이 있는 건가' 잠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쯤,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오토바이 타기 전, 장씨에게 물었었다. "헬맷은 안 쓰냐"고. 그랬더니 장씨가 대답했었다. "배달할 때 무거워서 못 쓴다"고. 그 의미를, 오토바이를 타보니 알게 됐다. 도저히 헬맷을 쓰고 배달할 수 있는 속도가 아녔다. 물론 그게 안전(安全)을 위해 옳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주기를. 헬맷을 쓰고 다녀도 될 만큼 시간을 충분히 주기를.
오토바이에 익숙해지니 그제야 장씨를 따라갈 기회가 왔다. 건물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가는 그를 재빨리 뒤쫓았다. 그냥 걷는 건 경보 수준이고, 계단은 두 계단씩 올랐다. 요즘 부쩍 돼지가 된 터라, 한 계단씩 빠르게 오르려 했더니, 그가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다. 속으로 몇 번이나 '같이 가요 집배원님'을 외쳤는지. 그랬더니 그 말이 들렸는지, 장씨가 "두 계단씩 가야한다"고 일러줬다. 그래서 나도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갔다. 어느 정도냐면, 운동할 때 맘먹고 경보로 걷는 것과 비슷하다. 계단이든, 언덕이든, 평지든 간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대다수라, 그렇게 쉼 없이 오르고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2층은 숨이 헐떡거릴 때쯤 멈췄고, 3층은 숨이 턱까지 찼고, 4층은 헉헉 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가끔 5층까지 갈 땐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끓어올랐다. 언제가 생각났냐면, 지난해 폭염 때 소방관 체험을 했을 때가 생각났다. 소방관 출동이 잦지 않은 대신 강렬했다면, 집배원은 강도는 그보다 덜한 대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고역이었다. 오토바이로 빠르게 이동했다가 멈췄다가, 내려선 그렇게 뛰어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일이 반복됐다. 배달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등산한 뒤 내려온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덧붙여 얘기하면, 내가 체험한 건 장씨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면 그는 20kg이 넘는 우편물을 싣고 오토바이를 주행했기 때문에. 그에 비해 내 오토바이 배달통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장씨는 우편물을 꺼내어 보고, 어딘지 파악해야 했고, 거기에 정확히 가야 했고, 가서는 사인을 받았고(등기나 택배), 배달을 마친 뒤엔 PDA에 일일이 정보를 입력하며 이동을 했다. 또 하나, 그 와중에 이어폰을 꽂고 전화도 받았다. 다들 한 번쯤 집배원을 재촉해봤을 것이다. "배달 언제와요?" 이 통화를 어떤 상황에서 받는지 알게 됐다.
집배원은 일반 택배기사와 달리 괘씸한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등기 우편물(이하 등기)'이었다. 등기란 '우편물의 안전한 송달을 위하여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접수할 때부터 배달될 때까지 기록, 취급하여 분실사고가 없도록 특별히 취급하는 제도'다. 이 사전적 의미도 집배원 체험이 끝난 뒤 다시 찾아봤다. 통상 내용증명 등 법적 서류를 보내거나, 구청 서류 등 각종 중요 우편물을 보낼 때 쓴다. 그래서 비용도 일반 우편물보단 좀 더 비싼 편이다.
'안전한 송달', 이것 때문에 집배원들이 겪어야 할 수고가 참 많았다. 가기 전에 받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본인이 수령해야 하며, 직접 사인을 받고, 부재 시엔 직접 안내장을 써서 문 앞에서 붙이고, 다시 방문해서 전달을 해야 했다. 두 번째 방문할 때에도 사람이 없을 경우에만 우체국에 보관할 수 있게 돼 있다.
장씨와 법원 서류를 전달하러 건물 4층까지 올라갔더니,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편물 도착 안내서'에 펜으로 종류가 뭔지, 언제 다녀갔는지, 담당집배원이 누구인지, 연락처가 뭔지, 이런 것들을 기입해 문에 붙였다.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대부분 받는 사람이 없었다. 장씨는 "내일 또 와서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어제 다녀간 곳 중엔 우편물 도착 안내서를 아예 떼지도 않은 집도 여럿 있었다. 장씨는 "내용증명 같은, 받기 싫은 서류가 많아 아예 보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 덕분에, 집배원은 여러 번 같은 곳을 와야 한다. 고생스럽게도.
정오가 가까워지자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여름이란 걸 까먹고 있다가,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새삼 생각이 났다. 문 지부장이 건넨 모자가 스몰(S) 사이즈라, '장군감'인 내 머리통엔 잘 안 맞아서 안 쓰려 했는데, 그랬다간 정말 죽을 뻔 했다. 그런데도 그는 "남기자님, 머리가 작아서 잘 들어가네요"라며 반어법(法)을 탁월하게 구사했다. 어쨌거나, 모자를 써도 정수리가 뜨거울 만큼 힘들었기에 잠자코 열심히 쓰고 다녔다.
오전 배달이 끝날 무렵엔 시계를 자꾸 보게 됐다. 나름 다양한 체험도 했었고, 뭐든 잘 참는 인내의 아이콘이건만, 진짜 너무 너무 쉬고 싶었다. 건물 4층을 한 번, 이어 3층을 한 번, 그리고 5층을 한 번 배달 다녀왔을 땐 진짜 ‘악’ 소리가 저절로 났다. 그러다 다음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걸 확인하곤, '이걸 발명한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며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도 '대체 언제 쉬는 걸까', '왜 이렇게 바쁘게 다니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도 쉬이 줄지 않는 배달통 안의 우편물을 보며, 장씨의 조급한 맘도 알 것 같아 꾹 참고 따라다녔다.
유일하게 위로가 된 건, 배달하러 가서 잠깐씩 쐬는 '에어컨 바람'이었다. 어찌나 달콤한지, '배달 서명을 좀 늦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수취인에게 간절히 레이저 눈빛을 쏘기도 했다. "갑시다"하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는 장씨가 야속했고,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그마저도 에어컨을 안 틀어 놓은 공인중개사에 갔을 땐, 울고 싶었다. 그만큼 쉽게 지쳤고, 그만큼 덥고 힘들었다.
허기가 몰려올 무렵, 국밥집에 택배 하나를 전달하러 갔다. 가게 안은 이미 꽉 찼고, 바깥에도 줄이 길게 서 있는 걸 보니 꽤 유명한 집인 모양이었다. 고소하고 진한 국물 냄새가 코를 찌르니, 배속에서 참고 있던 거지 떼들이 "밥을 달라"고 뱃가죽을 치기 시작했다.
장씨도 그걸 알았는지, "여기 완전 유명한 맛집이라 사람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럼 와보셨느냐"고 묻자, 한두 번 정도 아내와 함께 왔단다. 이 지역만 2년을 배달했는데, 와본 게 그것밖에 안 됐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서, "점심시간 몇 분이냐" 물으니, "바쁠 땐 짜장면으로 때워서 10분, 길어도 20분 안엔 다 먹는다"고 했다.
밥을 먹으니 기운이 좀 났다. 7월부터 큰 맘 먹고 다이어트하려 했는데,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웠다. '이건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했다.
오후 배달 업무도 비슷했다. 일반 우편물을 우편함에 빠르게 꽂아 넣으면서 등기 우편물, 그리고 택배를 함께 배달해야 했다. 특히 오후엔 부피가 큰 택배를 배달해야 했다. 오토바이로 싣고 오기 어려웠던 택배들을 자루에 담아 차로 금천우체국까지 배송해오는데, 그걸 오후에 배달하는 일이다. 금천우체국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오전에 했던 것처럼 동선에 따라 상자를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았다.
택배를 배달하는 것도 등기와 비슷했다. 미리 받는 사람에 연락을 하고,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것. 다른 택배업체가 보통 부재 시 문 앞에 두거나 경비실에 맡기고 간다. 장씨는 “가끔 배달하다 다른 택배업체 직원과 마주치면, 엘리베이터에서 집이 가까울 땐 내리지도 않고 던지고 가는 걸 봤다”고 했다. 우체국 택배는 그렇게 못한다. 과정이 더 복잡하게 돼 있었다.
받는 사람이 없을 땐, 꼭 전화를 하게끔 돼 있었다. 맘대로 문 앞에 두고 갈 수 없단다. 그게 시간을 꽤 많이 걸리게 했다. 초인종을 누르며 장씨가 "우체부 아저씨에요"라고 외쳐도,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연락을 받으면 어떻게 조치를 할지 결정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난감하단다.
그럴 때 고마운 게 '배송 메시지' 하나라고 했다. '문 앞에 놔주세요'라거나, '부재시 경비실에 보관해주세요' 같은. 택배를 주문하며 남기는 메시지 말이다. 실제 대부분 택배엔 그런 메시지가 있어서, 사람이 없어도 장씨가 그에 따라 결정하면 됐다. 문 앞에 놔두는 게 많았고, 보일러실에, 또는 방범창 너머 창문 안으로 넣어달라거나. 그렇게 하니 빨리 처리하고 갈 수 있었다.
근데 배송메시지가 없고, 사람도 없을 땐 전화를 해야 했다. 연락도 안 받을 땐 정말 난처했다. 아주 작은 노력으로도 집배원들이 한결 편해졌다. 장씨는 "배송 메시지 하나를 남겨주는 게, 배달하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고 했다.
기운이 빠질 대로 빠졌을 때 힘이 된 건, 받는 이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였다.
시간에 쫓겨 숨이 턱턱 막히다, 도착해 우편물을 건넬 때 말이다. 우유 배달을 오래 했다던 한 아저씨는 "왜 이리 오랜만에 왔느냐. 잘 지냈느냐"며 "더운데 고생이 많다"고 차가운 우유를 줬다. 고단함에 얼굴까지 올라와 있던 열이 시원스레 내려갔다. 한 아이 엄마는 택배를 건네자 "집배원님,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하고 따스한 목소릴 들려줬다. 인사를 들을 새도 없이 바삐 뒤돌아서는 순간이었지만, 메아리처럼 귓가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받는 사람이 없을 땐 장씨가 메시지를 남겼다. 가만히 보니 택배가 도착했단 내용 뿐 아니라, 덕담도 조금씩 들어 있었다. "우체국 택배 현관 앞에 놓고 가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이렇게. 새해로 바뀌었을 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남기기도 했단다. 거기에 친절히 답장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네, 고맙습니다. 더우신데 수고하세요." 그 문자를 보여주며 장씨는 웃어보였다. "이런 말 한 마디가 힘이 되느냐"고 했더니 "당연하죠. 얼마나 기운이 나는데요"하면서.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다녔다. 어느덧 오후 3시30분이 넘어갔다. 온 몸을 두들겨 맞은 듯 뻐근했다. "거의 다 돌렸다"는 말에 힘이 나질 않았다. 결국 편의점에 들러 이온음료 두 통을 샀다. 뚜껑을 연 자리에서, 이온음료 600밀리리터짜리를 원 없이 들이켰다. 갈증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한 번, 두 번 마시고도 성이 안 차 세 번, 네 번까지. 그러니 뚱뚱한 통이 단숨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렇게 버티다 3시53분쯤, 마침내 만둣국을 파는 음식점 앞에 왔다. "여기가 마지막 배달지"라 장씨가 말할 때 한숨이 나갔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북한산 정상에 마침내 오른 것처럼.
그게 화요일이었다. 그러니까, 평일을 3일이나 더 그런 하루를 보낸단 의미다. 토요일에 근무하는 집배원들도 여전히 많다. 그리고 배달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녔다. 만신창이가 된 채 구로우체국으로 돌아가 내일 배달할 일반 우편물을 분류해야 했다. 미리 해놓지 않으면 다음날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낼 수 없단다. 구로우체국에 도착하니 오후 4시30분, 분류를 모두 마치니 7시쯤. 그제야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한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오전 7시20분부터 고된 업무의 반복이다. 장씨는 "익숙해지면 좀 괜찮다"고 했지만 보통 일이 아녔다. 짧은 시간에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았다. 육체적 피로가 순식간에 쌓였다. 난 그 다음날까지도 정신을 못 차렸다. 아침엔 멍했고, 점심을 거르고 낮잠을 잤다.
육체적 피로가 다가 아녔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누구나 상대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것도 받는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런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장씨는 "어떤 사람은 내용증명 서류를 전해주러 갔더니, 내 앞에서 쉬지 않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보낸 이에게 욕한 거지만, 듣는 사람은 자기뿐이었단다. "왜 빨리 안 가져오느냐"며 전화를 붙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욕만 하는 이도 있었단다. 또 다른 사례도 들었는데, 배달 받은 사람이 "김치 국물이 터져서 흘렀다"며 "와서 닦으라"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굳이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가까이서 본 것만 해도 충분히 힘들어 보였다. 난 장씨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만, 그는 동시에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우편물을 분주히 전달해주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동시에 전화를 받으며 대민(對民)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어디냐", "언제 오냐"고 묻는 건 예사고, 이미 지나간 곳인데 "못 받았으니 다시 오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힘들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장씨는 가는 곳마다 "우체부 아저씨에요"하면서 애써 큰 소리로, 기운차게 말을 건넸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사람' 이다. 인력이라고 썼다가, 사람이라고 고쳤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더 와 닿을 것 같아서.
배달을 하다 공사장만 보면 심장이 철렁한단다. 집배원 수는 한정돼 있는데, 새 건물이 들어서면 그만큼 할 일이 늘어서다. 구로구 항동엔 올해 3월에 5000세대짜리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했단다. 누가 배달하겠는가. 오롯이 집배원들 몫이다. 그러면 그에 맞게 집배원들 숫자가 유동적으로 늘어야하는데, 이게 빨리 반영이 안 된단다. 정부조직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는 꿈지럭거리고, 기획재정부는 예산 지원에 인색하다고.
아니, 엄밀히 따지면 우정사업본부는 자체적으로 운영 중이란다. 정부 예산이 일반 회계와 특별 회계로 나눠지는데, 우정사업본부는 특별 회계라 자체적으로 번 돈으로 운용한단다. 그러니 우체국에 와서 "니네가 세금 받아서 일을 이따위로 하냐"고 하는 민원인들은 정정하길 바란다. 당신 세금이 아니다. 심지어, 정부 지원은커녕 이익이 생길 때마다 일반 회계로 매년 수천억원씩 가져갔다고. 그렇게 정부 재정에 기여한 돈이 무려 2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체국은 당연히 공공영역이라 여겼고, 정부가 지원한다 생각했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상황이 이런데, 일반 우편물이 줄면서 적자는 점차 늘어간다고 했다. 금융 사업(우체국 보험 등)에선 이익을 내지만, 그건 또 고객 자산이라 쓸 수가 없다고. 이래저래 돈줄은 막히고, 정부 지원은 없고, 사람 충원은 앞에서 얘기한대로 제 때에 맞춰 안 이뤄지고. 이익금은 일반 회계로 빼가기나 하고. 여기에 택배 물량은 점차 늘어 업무 강도는 높아져 간다고.
장씨에게 "지난해 얼마나 쉬었느냐"고 물었더니, 연가 20일 중 고작 5일 밖에 못 쉬었다고 했다. "왜 그렇게 연가를 못 썼느냐" 했더니, 동료에게 미안해서 그렇다고. 그러면서 '겸배(兼配)'란 단어를 쓰며, 책상에 붙은 종이를 가리켰다. 거기엔 배달 구역별로 한 사람씩 집배원 이름이 더 붙어 있었다. 장씨가 쉬는 날, 그 구역을 대신 배달해야 할 동료 이름이다. 그러니 과연 맘 편히 쉴 수 있을까. 누구보다 같은 처지라서, 누구보다 동료가 고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이미 목구멍에 찰 만큼 배달 물량이 많은 걸 잘 아는데, 거기에 우편물 한 통이라고 얹고 싶을까.
그렇게 아파도 참고, 피곤해도 참고, 참고 또 참는 새 집배원들은 오늘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에필로그(epilogue).장씨와 점심 먹으며 나눈 이야기. 숟가락을 든 뒤에야, 그의 얘길 비로소 들었다.
결혼을 조금 늦게 했고, 5년 동안 아이가 없어 맘을 많이 썼단다. 다행히 아들을 낳았단다. 이젠 집안 곳곳을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데, 물건을 다 집어 던져서 아주 죽겠다고. 집배원 일하고, 육아하고 뭐가 더 힘드냐고 물으니 "애 보는 것"이라고 칼 같이 답했다. 한바탕 웃고나서, "그럼 누굴 더 많이 닮았냐"고 했더니 "반반 닮았는데, 날 더 닮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허" 하며 웃는 게, 영락없이 아빠 미소였다. 땡볕에도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가던 집배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아빠고, 남편이었다. 과로로 쓰러졌단 집배원들이 떠올라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했더니, 장씨가 "그렇잖아도 협심증(심장질환)이 있다"고 고백했다. 과로로 세상을 떠난 집배원들이 생각났다. 속이 상해 뒤집어졌다.
그러니 도저히 따뜻한 말로 끝낼 수가 없다. '예언' 하나 하련다. 노스트라다무스보다 정확하고, 송혜교-송중기 커플 결별을 예언했다던 어느 블로거보다 날카롭다.
집배원들은 또 죽을 것이다. 혹시나 의심간다면 하루만 직접 해보시라.
하지만 예언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길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그건 집배원들이 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당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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