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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지폐에 한국 수출품이 도안된 까닭은?

호국영인 2016. 3. 22. 08:57

쿠바 지폐에 한국 수출품이 도안된 까닭은?


쿠바 지폐에는 한국의 수출품이 그려져 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2007년 한때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됐던 뉴스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KBS 퀴즈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문제이기도하다.

쿠바 중앙은행이 2007년 1월부터 발행한 10페소(당시 한화 약 만원)짜리 지폐에는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설비(PPS)가 도안돼 있다.

쿠바 정부는 가장 통용량이 많은 10페소짜리 지폐의 뒷면에 '에너지 혁명'이라는 문구와 함께 발전설비 1세트를 도안해 넣었다.

이 설비는 디젤엔진 등 발전기의 구동에 필요한 설비들을 컨테이너에 담은 소규모 패키지형 발전소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쿠바 전역에 400여 기를 설치했다.

이 설비가 쿠바 전체 전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되는 중요성을 반영하듯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은 직접 현장을 찾아 공사를 지휘하는 등 국가주력사업으로 추진했다.

전력사정이 좋지 못한 쿠바는 이 공사 이후 전기수급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한국의 발전설비를 지폐에 도안해 넣은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발전설비를 한 현대중공업 공사현장을 2006년 6월 방문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발전설비를 한 현대중공업 공사현장을 2006년 6월 방문했다.



쿠바는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이지만 2005년 당시 현대중공업은 7억 2천만 달러 상당의 공사를 수주해 관심을 끌었다.

한국도 쿠바와 수교할까?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인 쿠바 방문을 하자 한국과 쿠바 간 국교정상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쿠바가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다시 수교한 것은 오랜 '고립'에서 탈피해 '변화의 길'을 걷겠다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단절됐다. 따라서 두 나라는 공식 수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우리 정부는 쿠바와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쿠바 간 국교정상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을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그간 미진했던 중남미 지역으로도 외교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겠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도 추진하겠다"며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문제를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우리 정부는 쿠바 아바나에서 개최된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기도 하고, 세계식량계획(WFP)과 쿠바 식량 안보 개발협력 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또 한·쿠바 정부 간 협력사업의 하나로 서울에서 '2015년 쿠바 문화예술축제'를 개최해 쿠바 문화사절단이 방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쿠바와의 수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쿠바 국교정상화의 관건은 결국 북한이 최대 변수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혁명정권을 수립한 직후인 1960년 8월 쿠바와 수교했으며, 피델 카스트로와 김일성의 끈끈한 유대를 바탕으로 이른바 '형제국가' 관계를 유지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에도 국가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던 카스트로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피델 카스트로나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등 강경 지도자들은 정치 일선에서 사라졌다.

쿠바의 인터넷 매체들은 쿠바에서 불법 무기를 싣고 간 것으로 알려진 북한 선박의 파나마 억류 사건 등을 고려하면 북한과 쿠바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지만,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한류 붐'이 쿠바에도 예외는 될 수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쿠바의 독립인터넷매체인 쿠바넷은 지난해 '한류의 시각'이라는 칼럼에서 쿠바에서의 한국 드라마 인기와 쿠바 문화예술공연단 한국 방문 등 문화 교류 확대를 근거로 쿠바가 북한보다는 한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칼럼은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예측이 어려운 김일성 손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기로 했을지도 모른다"고 썼을 정도다.

지난해 쿠바 방문 한국인 7,500여 명

우리나라는 2005년 쿠바 아바나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무역관을 개설해 경제, 교역, 통상, 문화 등의 교류 창구 역할을 맡겨왔다.

지난해 쿠바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7,500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트라 아바나 무역관은 2015년 7,500여 명의 한국 관광객이 쿠바를 방문했다고 쿠바 관광청 통계를 인용해 밝혔다. 이는 전년보다 50% 증가한 것이다.

쿠바 아바나 공항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쿠바 아바나 공항에 도착한 항공기에서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쿠바를 찾은 한국 관광객은 2010년에는 3천여 명, 2014년엔 5천여 명 수준이었다. 관광객은 주로 신혼부부와 가족 단위를 포함해 학술단체, 문화행사 참가자 등이었다. 아바나 무역관은 "대학생들이 중남미 지역에서 배낭여행을 하면서 쿠바를 들르는 사례도 눈에 많이 띈다"고 밝혔다.

지난해 쿠바를 방문한 전체 외국 관광객은 313만 9천 명으로 전년보다 17.6% 증가했다. 이 가운데 미국인은 14만 7천 명으로, 전년 6만 2천 명에 비해 급증했다. 미국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한 뒤 미국인들의 쿠바 방문 제한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

쿠바는 중미의 새로운 허브가 될까?

쿠바는 북미와 남미 대륙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래서 쿠바는 물류 허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특히 의료·바이오, 건설·플랜트, 관광, 신재생 에너지 등 분야 투자 진출이 유망할 것이라며 마리옐경제특구를 중심으로 한 투자유치 전략에 힘쓰고 있다. 각종 세제 혜택과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쿠바는 세계적 수준의 의료·바이오 기술과 니켈·코발트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정부의 무상교육 정책으로 문맹률이 1%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노동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의 교역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아바나 무역관이 개설되면서 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대 쿠바 수출액은 2005년 4천만 달러 수준에서 2008년에는 3억 4천만 달러까지 늘었다.

큰 비중을 차지하던 수출 품목 가운데 하나인 발전기 납품이 2008년 종료되면서 2009년 이후 2013년까지 4천만∼5천만 달러 수준으로 다시 감소했다.

지난해는 교역 규모가 6천8백만 달러(약 790억 7천만 원)로 전체 교역량의 0.1%에 못 미치지만, 앞으로 신시장으로서 진출 가능성은 매우 큰 것으로 코트라는 보고 있다.

특히 쿠바 내 한류 인기는 놀라울 정도여서 시장 개방 움직임과 함께 2013년부터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가 최근 케이팝(K-Pop)으로 확산하며 한국에 대한 현지 분위기도 매우 좋은 편이다.

쿠바와 미수교국은 한국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쿠바의 미수교 국가 중 남은 나라는 한국과 미국, 이스라엘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선언해 한국과 이스라엘만 남았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외교관 1명이 이미 쿠바에 파견나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외교관은 캐나다 공관에 소속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국가의 외교관이 중립국 성격의 공관에 소속돼 주재하는 형식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은 멕시코 대사관에서 쿠바를 담당한다.

그동안 쿠바는 거리도 멀고 제약이 많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쿠바도 미국과의 수교에서처럼 빗장을 풀고 세계로 나오고 있다. 한국도 이제 아바나에 공식적으로 발을 내디딜 때가 왔다.

백진원기자 ( jwhit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