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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애국정신 가슴에 품고 산다"..

호국영인 2019. 3. 1. 07:38

"유관순 애국정신 가슴에 품고 산다"..

유관순 열사 고향 천안 병천 가보니...

      

고흥 유씨 후손들 집성촌 이루고 유 열사 뜻 기려
서훈 1급 추서소식에 후손들 "늦었지만 잘 된 일"
3.1운동 100년 맞아 생가에 관람객 발길 이어져
지난달 26일 오후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1리 유관순(1902~1920) 열사 생가에는 관람객이 많았다. 평일인데도 평소 주말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은 것 같았다.
3·1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 병천면 용두1리 유관순 열사 생가를 찾은 관람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천안 병천은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다. 유 열사의 생가를 중심으로 그의 일가친척들이 마을을 지키며 산다. 이날 용두1리에서 만난 후손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독립을 위해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뜻을 간직하고 산다”고 말했다.

정부가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유공자 1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는 소식에 이날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후손들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이제야 열사의 위상이 제 자리를 찾았다”며 반가워했다.

유 열사는 1962년 서훈 때 5등급 중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지만, 공적과 상징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후손과 기념사업회, 충남지역 자치단체장 등은 서훈 등급을 격상해달라며 국민 청원운동 등을 벌였다.

열사는 1902년 12월 병천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씨와 어머니 이소제씨 사이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화 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이었다. 3월 1일 탑골공원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열사는 고향에 내려와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4월 1일 아우내 장날 거사를 벌였다.
유관순 열사인 후손인 유문상(86.가운데)씨가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유관순 시단' 회원들과 함께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거사 날 유 열사의 부모를 비롯해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그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삼천리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냐”며 상고를 포기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열사는 모진 고문을 받고 1920년 9월 28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유 열사의 고향에는 고흥 유씨 후손이 집성촌을 이뤄 산다. 용두1리에만 25가구가 있다. 후손에 따르면 애초 서울(한양)에 살던 유씨 일가는 13대조 때(조선 인조반정) 이곳에 옮겨 와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용두1리 유제돈(79) 이장은 “어린 소녀가 일제와 맞서 싸우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순국한 것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할 정신”이라며 “도시에 사는 젊은 후손들도 열사의 애국정신은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 열사는 유 이자의 고모뻘이다. 유 이장의 집은 열사의 생가와 20m가량 떨어져 있다. 유 열사에게는 오빠와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막내인 유인석씨는 생가 맞은편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지난달 26일 유관순 열사의 생가마을인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1리 유제돈 이장(왼쪽)이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용두1리에는 유 열사의 후손인 고흥 유씨가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다. 신진호 기자

유 이장은 “아저씨(유인석씨)에게서 열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어린 시절 교과서에 나온 유 열사의 기록을 보면서 후손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유 열사의 후손인 유문상(86)씨는 ‘유관순 시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7월 출범한 시단은 매월 1일 천안 병천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에서 시 낭송회를 연다. 전국에서 모인 시단 회원과 학생들이 독립을 위해 순국한 선열에게 시를 올리는 방식이다. 설립자는 성재경 시인, 현재는 한민교 회장이 시단을 이끌고 있다.

유문상씨는 “한때 유 열사의 기록이 교과서에서 빠져 국회를 찾아가 회복을 요구해 관철한 적이 있다”며 “3·1정신은 잊히지 않는 민족의 혼인 만큼 후손들이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열사는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유연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3·1운동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유 열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3·1절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이 열사를 추모하고 있다. 프리랜서김성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유 열사의 행적은 병천 곳곳에 남아 있다. 만세운동을 벌인 아우내장터 입구에는 2009년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이 조성됐다. 천안시와 유관순기념사업회는 매년 2월 마지막 날 열사와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아우내 봉화제도 연다.

생가 뒤편 매봉산을 넘어가면 봉화대와 초혼묘·추모각·기념관 등이 있다. 생가터는 봉화 터와 함께 1972년 10월 사적(제230호)으로 지정됐다. 초혼묘는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1989년 10월 봉헌한 시설이다. 일제가 부숴 터만 남았던 생가는 1991년 2월 복원됐다.

생가 작은 방에는 만세운동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거사를 도모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놓았다. 생가 바로 옆에는 유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가 있다. 이 교회 성도들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 동참해 독립을 외쳤다고 한다.
유관순 열사인 후손인 유문상(86)씨가 지난달 26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열사 생가에서 만난 김미숙(50·여)씨는 “이곳에 오면 유 열사의 애국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순국선열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