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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조드' 공포 확산.."초원 떠나는 몽골 유목민들"

호국영인 2019. 2. 2. 15:38

[취재후]

대재앙 '조드' 공포 확산.."초원 떠나는 몽골 유목민들"

      


"들짐승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게 자연의 변화"

몽골에서 1월은 가장 추운 달입니다. 평균 기온이 영하 30도를 밑도는 몽골의 겨울은 4월까지 이어집니다. 지난 12일, 취재진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2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트바이막의 한 초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양 5백여 마리와 소 등의 가축을 키우는 아디야 바자르씨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취재진을 전통가옥인 게르로 안내했고 손님들에게 전통적으로 건넨다는 따뜻한 수태 차를 줬습니다.

유목민들의 따뜻한 환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올해 겨울을 나기 어떤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디야씨 얼굴은 금세 그늘이 번졌습니다.

아디야 씨는 취재진이 오기 사흘 전 새벽에 가축 우는 소리가 나 밖에 나갔더니 양 5마리가 죽어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늑대 혹은 다른 들짐승의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연에서 흔히 있는 일이거니 했지만, 이야기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아이디야 씨는 요즘 들짐승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땅에서 풀이 나지 않고, 모래만 쌓이는 사막화 현상입니다. 즉, 자연의 변화가 가장 두렵다는 겁니다.

몽골 트바이막 한 초원에서 양떼들이 먹을 풀을 찾고있다.


아디야씨 가족은 매년 따뜻한 남쪽 겨울 집으로 이동하는데 한창 살이 올라야할 가축들이 살이 찌지 않아 걱정입니다. 예전에 양 떼들을 초원 언덕 위에 풀어놓으면 알아서 풀을 찾아 먹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다릅니다. 따로 먹이를 사오거나, 겨울 전에 모아둔 풀을 하루에 세 번 양들에게 줘야 합니다. 그만큼 풀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풀이 있어도 영양가가 부족해 최근 소의 젖 양이 크게 줄었습니다. 가축들은 점차 야위어가고 있었습니다. 올해 겨울은 혹한에다 가뭄까지 겹쳐서 가축에게 먹일 물도 부족했습니다. 아디야씨 가족이 식수를 해결하는 강은 겨울 집에서 5㎞ 떨어진 곳에 있는데,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강의 얼음을 깨 통에 넣고 녹여서 겨우 식수를 해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곳은 본래 깊은 강물이 흘렀지만, 가뭄으로 강이 메말라 실개천으로 변했다.


문제는 가축입니다. 가축들을 먹일 물이 없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인근의 깊던 강들은 모두 실개천으로 바뀌었고, 물길이 있었다는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계속되는 자연의 변화때문에 아디야씨는 유목 생활을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놨습니다.

지난 2010년 혹한으로 키우던 가축이 모두 얼어 죽은 경험이 있는 아디야씨는 혹시 또 비슷한 상황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키우던 가축이 몰살돼 땅에 묻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면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가축 수백만 마리 몰살하는 대재앙 '조드'의 공포

몽골에선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이 계속되고, 풀이 자라나지 않는 재해현상을 '조드' 라고 부릅니다. 몽골어로 '재앙'이라는 뜻입니다. 보통은 10년에 한 번씩 찾아오기 때문에 이 시기만 넘기면 한동안은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조드의 간격이 짧아졌고 언제 올 지 예측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재앙 '조드'가 찾아오면 가축들이 몰살되는 피해가 잇따른다.


지난 2010년 최악의 조드 때는 몽골 유목민들이 가축 6백만 마리를 잃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2년 4년마다 찾아오는 조드는 유목민들의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초원을 떠나는 선택을 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평생 해 온 일이 초원에서 가축을 돌보는 것인데,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더는 버틸 수 없게 됐습니다.

도시로 온 유목민들... 막막하기 그지 없는 빈곤한 삶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 언덕에는 빼곡히 밀집해 있는 주거지역이 있습니다. 이른바 '게르촌'으로 불리는 불법 주거지역입니다. 초원에서 도시로 온 유목민들이 대부분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유목을 포기하고 도시로 왔지만 마땅한 주거지를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초원과 마찬가지로 게르를 짓고 살아갑니다.

5년 전 '조드'로 가축을 모두 잃고 도시로 이주한 네르뷔씨 가족


7명의 아이와 작은 게르에서 사는 네르뷔씨는 2014년 조드 때 가축을 모두 잃고 도시로 왔습니다. 당시 남편도 사고로 잃어서 혼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네르뷔씨는 2만 투그르,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의 게르 땅 값을 매달 냅니다. 네르뷔씨는 이제 나이가 들어 일자리를 얻기 힘듭니다. 그래서 양털을 잘 다듬은 뒤 신발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고 있는데, 팔리는 건 하루 고작 한두 켤레 뿐입니다.

네르뷔씨는 도시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초원에서는 돈을 쓸 일이 없었는데, 도시로 오면서 모든 게 돈이라는 것입니다. 신발만 팔아선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도시의 새 삶을 꿈꾸며 왔지만, 현실은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외곽에는 '게르촌'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게르촌 대부분의 탈 유목민들의 삶은 비슷합니다. 겨울밤은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지만 제대로 된 난방과 수도시설은 없습니다. 한 포대에 3천투그르(우리 돈 천5백 원)하는 석탄 원석을 사와 지내고 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석탄 원석을 쓰다 보니 아침과 저녁 무렵이면 게르촌 마을은 연기로 휩싸입니다. 석탄연기가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게르 촌의 공기 오염과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은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합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나야 하니 석탄 원석을 쓸 수밖에 없고, 이도 없으면 폐목과 폐타이어 등을 구해와 마구 태웁니다. 추위를 견뎌야 하는데 가릴 것이 없습니다. 석탄 한 포대는 추운 겨울엔 하루도 버티지 못합니다. 아껴 써야 겨우 이틀을 쓸 수 있습니다. 하루나기가 고단할 수밖에 없는 탈 유목민들의 모습입니다.

풍요로운 땅에 찾아온 '자연의 역습'


몽골의 초원은 급속도로 병들고 있습니다. 몽골 지리생태연구소의 발표로는 몽골의 사막화 비율은 전체 국토의 78.3%에 이릅니다. 지난 10년 사이에만 10%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모래 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몽골 사막화를 연구해 온 몽골 지리생태연구소 하올란벡 박사는 "몽골의 초원과 땅은 영양분이 없어지면서 사막화가 되고, 높은 산악지대는 병들고 있다" 며 "이것은 지구온난화 등에 따른 이상 기후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난개발을 하면서 자연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 재앙은 자연과 가장 가까이에 맞닿아 있는 몽골 유목민들에게 먼저 닥쳤습니다. 이제 몽골의 푸른 초원에서 가축을 돌보는 유목민의 모습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몽골 '기후 난민'과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2일) 밤 9시 30분에 방영되는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에서 이어집니다.

이진연 기자 (jinlee@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