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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히딩크 보좌하던 박항서, '베트남 영웅'으로 우뚝서다

호국영인 2018. 12. 16. 16:49

묵묵히 히딩크 보좌하던 박항서,

'베트남 영웅'으로 우뚝서다...

박항서의 아빠 미소 [VTV 영상 캡처]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을 보좌하며 묵묵히 팀을 이끌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을 거둔 폴란드전에선 황선홍이 선제골을 넣은 직후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15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우승한 베트남 선수들이 박항서 감독을 헹가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16년이 흘러 그의 축구 지도자 인생은 영광 후 시련을 딛고 2막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 박항서 감독(59)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5일 열린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 1-0으로 승리했다. 1차전을 2-2로 비긴 베트남은 합계 3-2로 말레이시아를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베트남은 2008년 첫 우승 이후 10년 만에 스즈키컵 패권을 차지했다. 베트남은 A매치 16연속 무패를 달리며 현재 세계 각국 대표팀 중 최다 무패 기록도 이어갔다.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 전역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국에서도 동시간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많은 축구팬의 관심을 받았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 후 “지도자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 국민에게 우승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사랑해주신 만큼 베트남 국민들께서 대한민국도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항서 감독은 현역 시절 다부진 플레이를 펼쳤지만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국가대표로 뛴 건 1981년 일본과의 친선전 1경기 출전이 전부다. 1988년 은퇴 후 트레이너와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은 그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사단의 수석코치로 축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을 보냈다. 월드컵 성과를 인정받아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감독으로 처음 데뷔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란에 패해 동메달에 그친 뒤 곧바로 경질됐다. 이후 프로팀 코치를 거쳐 2005년에 막 창단된 경남FC의 감독으로 취임해 2007시즌에는 팀을 4위까지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사임하고 이후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 등을 거쳤으나 눈에 띌만한 성적을 내진 못했다. 이후 프로에서 불러주는 팀이 없어 실업축구 창원시청에서 감독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감독 무대에서도 잊혀져갈 무렵인 지난해 10월 베트남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을 맡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깜짝 성과를 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은 물론 동남아 국가 중 처음으로 4강 진출에 성공하며 준우승까지 이뤄냈다.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 축구 사상 처음으로 4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늘 자신감을 심어주고 독려하며 할 수 있다는 긍정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었다.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에는 거세게 화를 내기도 했다. 늘 팀과 모든 것을 함께 했다. 20대 초반의 베트남 축구 황금 세대들은 박 감독의 조련 속에 더 단단해져갔다. 그리고 박항서의 베트남은 스즈키컵에서 염원이었던 우승을 일궈냈다. 우리나이로 예순, 여전히 열혈남아인 박항서는 뚝심 하나로 ‘베트남 국민 영웅’이 됐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