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회]
'카톡 알림음' 환청까지..휴대전화·신용카드 없이 살아보니
24일 발생한 ‘KT아현지사 화재’는 네트워크로 모든 사물이 연결되는 ‘초(超)연결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기자는 일일 체험에서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두고 왔을 뿐인데 모든 일상생활과 업무가 한순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함’이 단절되자 초조함과 무력감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 ‘현금 없는 카페’ 발길 돌려
식당을 찾는 데도 애를 먹었다. 한 달 전 방문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식당이었지만 길찾기 애플리케이션(앱)이 없어 찾는데 애를 먹었다. 방문하려던 식당을 포기하고 근처의 다른 식당에서 먹었다. 오후 2시 반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취재원이 보이지 않았다. 취재원은 차가 막혀 15분가량 늦는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기자가 지하에서 기다리는 동안 취재원은 지하철역 밖에서 기다려 동선이 엇갈려 버렸다.
편의점에서 생수 하나 사 마시기도 쉽지 않았다. 생수 한 병을 들고 1만 원권 지폐를 꺼냈다. 직원이 금고를 열어 보더니 동전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후 5시경 현금이 떨어져 다시 은행을 찾았지만 이미 창구 문이 닫혔다. 기자의 1년 카드 결제 횟수는 약 2000건. 휴대전화와 교통카드가 사라지자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만 같았다.
● 불안·초조함…‘카톡 알림음’ 환청 들려
올 7월 ‘2018년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의 51.5%는 하루 이상 휴대전화 사용을 중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KT아현지사 화재는 초연결사회에서 모든 생활이 끊기고 멈춰버렸을 때 ‘위험 사회’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초연결사회에서 단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다. 트라우마는 유사한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하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줄 아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생 이기쁨 씨(20·여)는 “한 달 전부터 SNS를 모두 지웠는데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꼭 필요한 연락만 취하게 돼 더욱 삶이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기술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휴대전화 사용을 조절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며 “사회적으로도 이런 생활이 용인되는 정책과 법안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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