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나를 행복하게 한 치킨..닭은 행복했을까
늦은 밤 월드컵을 보기 전 치킨을 시킨다. 잠시 뒤 당신 앞에 놓인 노릇노릇한 닭 한 마리.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행복해진다. 그런데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닭의 삶에 대해 말이다. 어떻게 도축됐는지, 불필요하게 심한 고통을 겪은 것은 아닌지 말이다.
모든 동물들이 사람처럼 행복은 물론 고통과 두려움도 똑같이 느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세계적으로 '동물권'을 추구하자는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달리 식탁에 오르기 위해 사육되는 닭의 동물권은 여전히 무시받고 있다. 언젠가 죽더라도 최소한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닭의 일생이 아름답다고?=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갑론을박을 일었다. 출연자들이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를 직접 키우는데 그 이유가 닭볶음탕 재료로 쓰기 위해서라는 방송 컨셉이 알려지며 잔인하다는 비판에 휩싸인 것. 제작진이 "밥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많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도 프로그램 의미를 설명했지만 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동물권 단체들은 지난 1일 공동 성명을 내고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동물권단체인 '동물해방물결'·'케어'·'MOVE' 등은 "제작진이 시작부터 닭을 지각력 있는 동물이 아닌 '식재료'로 규정했다"며 종 차별적인 인식을 지적했다. 또 해당 방송사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 강아지가 프로그램 종영 후 방치됐던 것을 들며 "동물을 오락거리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이 비윤리적이고 구태하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정성스레 병아리를 키운 후 도축해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는 과정이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알에서 태어난 닭이 식탁까지 오르는 길은 해당 프로그램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권 단체들은 "공장식 축산에서 길러지는 닭의 일생은 탄생부터 도살까지 이윤 극대화로 점철돼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농장? 공산품일 뿐=실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축된 닭의 수는 9억3602만마리인데 이들 대부분 자연수명을 누리지도 못했다. 닭의 자연수명은 7~13년인데, 고기로 사용되는 '육계'는 태어난 지 한 달 정도만에 도축됐다.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죽음을 맞는 것이다.
알을 낳기 위한 용도의 '산란계'는 2~3년 정도 사육되니 그나마 육계보다는 낫다. 하지만 수평아리는 또 이야기가 다르다. 수평아리는 알을 낳지 못해 '고기'로도 알을 낳는 '기계'로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태어나자 마자 분쇄기에 갈아져 찰나의 삶을 마친다.
그렇다고 사육되는 산란계나 육계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깨끗하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노닐다 떠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닭은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일생을 보낸다. 특히 몸을 움직이기도 불편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농림부의 '가축사육시설 단위면적당 적정 가축사육기준'을 살펴보면 산란계 한 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25x20cm)으로 A4용지 한 장 크기에도 못 미친다. 오는 7월부터 0.075㎡로 늘어나지만 여전히 넓다 할 수 없고, 그마저도 신규 설립 농장에 한해 적용된다.
좁은 공간에 있다보니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아프기도 한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산란계들은 옴짝달싹 하기도 힘든 좁은 케이지에 갇혀 알을 낳다보니 칼슘 부족으로 다리 골절이 쉽게 발생한다.
고통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산란율이 높아지는 것을 이용해 24시간 조명을 밝혀 잠을 재우지 않거나 일부러 모이를 주지 않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다른 닭을 공격하는 이상행동을 막기 위해 산 채로 부리를 자르는 일도 다반사다.
◇닭의 해방은 곧 인간의 해방=닭이 도축되기까지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사는 것으로 인한 해악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있었던 '살충제 계란 파동'이 대표적이다. '피프로닐'은 세계보건기구(WHO)는 2등급 유해물질로 닭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두통이나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살충제다. 당시 피프로닐이 검출된 농가는 진드기 박멸에 좋다는 소문을 듣고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국내산 닭의 진드기 감염률을 94%에 달할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다.
이는 닭이 인도적인 환경에서 사육된다면 생기지 않을 사고라는 시각이 많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자연, 혹은 방사 상태의 환경에 있는 암탉은 본능적으로 '모래 목욕'으로 몸의 진드기를 떼어낸다. 하지만 비좁고 비위생적인 케이지에서 본성이 억눌린 채 사는 닭에게는 모래 목욕이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불가피하게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살충제를 사용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조류독감(AI)으로 인해 수 천만 마리의 닭이 폐사하고 인체감염 위협에 시달리는 것도 근본적으로 비인도적인 사육 환경에서 비롯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비위생적인 사육장에서 면역력이 저하된 닭에게 투여한 항생제가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연구 결과도 있다.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 더뎌=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당국도 사육 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농식품부는 '동물복지인증 산란계 농장' 인증을 통해 사육밀도를 완화하고 깨끗한 시설을 제공하게 하는 등 인도적으로 닭을 사육하는 환경을 조성 중이다. 2018년 현재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장은 95개소에 달한다.
정치권의 동물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동물자유연대가 실시한 '시민 1만여 명에 대한 동물정책 수요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시민 중 83.5%가 '공장식 축산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다. 이형주 동물권단체 어웨어 대표는 "반려인구가 늘어나며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고 정치인들도 '반려견 놀이터' 등 편의시설 건립에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동물들의 권리나 복지에 대한 논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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