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우리나라 대표술? 너무 안타깝다"
서울 1호 '전통식품명인' 김택상 명인
▲ 김택상 전통식품명인이 삼해주 작업실에서 제자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택상 명인. |
ⓒ 이문예 |
'삼해소주가'의 주인장 김택상 명인(名人)은 지난해 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2016 전통식품명인' 7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국 75인의 명인 중 서울에선 유일하다. 그동안 크게 입소문이 나지도 않아 이름마저 낯선 삼해소주. 어떤 연유로 다른 다양한 음식 장인을 제치고 삼해소주를 빚는 그가 서울에서 첫 명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푸드앤메드'가 지난해 12월 15일 늦은 오후 삼해소주가에서 김택상 명인을 만났다.
술장이가 감내한 30년
현대식 한옥 건물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여니 집안을 가득 채운 오묘한 향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항아리마다 들어찬 누룩이 발효하며 풍기는 향내는 '구수하다'는 단어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 미묘하다. 약간 시큼한 향과 단내도 섞여 있다.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술향에 온 정신이 집중됐다.
▲ 작업실 곳곳에 놓인 항아리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다. |
ⓒ 이문예 |
예상은 했지만 고된 삶이었다. 무형문화재인 모친의 뜻과 우리 술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경제적으론 풍요롭지 못했다. 술독 들이기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제대로 한번 술을 빚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현실은 늘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뒷걸음질 쳤다. 몇 년 전엔 밀린 월세로 쫓기듯 지금의 비좁은 작업장으로 이사 올 수밖에 없었다. 삼해주가 겨울 한 철 빚어 마시는 술인 탓에 생산량이 적다는 이유도 있지만,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술은 전통주가 아니라는 김 명인의 고집 때문이기도 했다.
전통주는 느림이 빚어낸 술
"우리 술은 아무리 재료와 조건을 같게 해도 빚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빚고 시간을 들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그런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택상 명인은 공장식 소주가 우리나라 대표 술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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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유행 중인 저(低)도수 소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저도수 증류식 소주를 좋은 술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시판되는 낮은 도수의 증류주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맛이나 향을 첨가한 술이기 때문이란다. 전통식으로 제조한 저도주에선 높은 도수의 증류주에서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이 떨어진다고 했다. 김 명인은 국내ㆍ외 대부분의 전통 증류식 주류가 높은 도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주ㆍ위스키ㆍ보드카 등 증류주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전통 소주는 보통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는다. 대체로 40∼45도 사이가 가장 많다. 이 정도가 술이 가진 최상의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도수라고 한다. 양조과학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40∼45도 사이의 증류주를 선호했다. 누가 기준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가장 좋은 알코올 도수를 찾다보니 비슷한 선에서 암묵적 기준이 생겼다는 것이다.
"순수한 재료를 바탕으로 전통식으로 빚은 저도수 증류주는 맛이 없습니다. 저도수 소주엔 인공 첨가물을 넣을 수밖에 없죠. 같은 주류라도 그런 술과 전통주는 구분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주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목넘김과 후향이 좋은 술이 명주
김 명인은 그동안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재료를 달리하고 재료의 양을 바꾸면서 가장 맛 좋은 술을 빚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정성을 들여 빚어낸 술을 아흔이 넘은 노모(老母)에게 확인받는 일이다. 삼해소주가에선 어머니의 냉철한 평가를 거쳐야 비로소 삼해주가 탄생한다.
"어머니가 술을 빚는 방식 중엔 그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왜 꼭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치대야 하는지…등인데, 술을 빚어보면 알아요. 미묘하게 맛이 달라요."
▲ 김택상 명인과 ‘삼해주 아카데미’에 참여한 제자가 함께 술을 빚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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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도수가 높아도 입안에서 굴릴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목넘김이 좋아야 합니다. 술을 삼키고 난 후에 남는 후향도 중요하죠. 꽃향기가 강하게 나는 술이 좋습니다."
술 한 모금 한 모금에 그윽한 꽃향이 코끝에 앉았다. 공장식 소주엔 없는 묘한 향이다. 삼해주를 만드는 장인이 서울 1호 전통식품명인으로 선정된 이유를 얼핏 알 것만 같았다.
이문예 기자 moonye23@foodnm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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