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소식

IS 테러범 사살 '킬러 로봇'...인류의 희망인가 재앙인가

호국영인 2017. 2. 14. 07:13

[세계는 지금]

 IS 테러범 사살 '킬러 로봇'..인류의 희망인가 재앙인가


'자율살상무기' 도입 찬반 논란
유엔 "무차별 살해 위험"
"표적 주변 일반 시민까지 학살 우려"..연내 규제안 마련..중·아르헨 찬성
미·러 "개발흐름 못 막아"
"사막·해저·공중 등 특수상황서 용이"..미, 180억弗 예산 배정..러도 개발 속도
#.지난해 12월8일 데일리 메일 등 외신은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에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핵심 조직원 러스탐 아셀도르프(아부 무하마드)가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5년 2건의 차량 폭탄 공격으로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범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테러범 사살과 함께 작전 과정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바로 ‘킬러 로봇’이 작전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작전 영상을 보면 조그만 장갑차 모양의 킬러 로봇은 은신처 근처 언덕으로 올라가 출입문을 폭파한 뒤 테러범 사살 작전을 수행했다. 러시아 정부는 아군 피해 없이 작전이 종결됐다고 밝혔고, 이 영상을 본 수 천명의 네티즌들은 효율적인 작전에 찬사를 보냈다.

#.13일 후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에 가입한 123개국 대표가 모였다. 안건은 ‘킬러 로봇의 위험성’이었다. 대표들은 이 자리에서 ‘킬러 로봇이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올해 4, 8월 중 킬러 로봇 개발 및 생산을 금지하는 조항이 담긴 조약을 만드는 것과 관련한 공식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회의 개최 직후 시민단체들은 킬러 로봇이 국방 분야 등에서 활용되기 전에 ‘예방적으로’(preemptively) 관련 개발이 전면 금지돼야 한다며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에 따라 킬러 로봇 생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킬러 로봇은 인간 개입 없이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독립적으로 전투 등을 수행하는 기계로 자율살상무기(LAWS: 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s)로도 불린다. 현재 국제적인 흐름은 유엔회의에서 보듯, 도덕성을 갖추지 않은 킬러 로봇이 대량학살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들어 ‘개발 반대’가 우세한 상황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이미 킬러 로봇 관련 기술력을 상당 부분 확보한 러시아 등이 투자를 늘려가는 등 “개발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조건부 찬성 여론이 맞서고 있다.

◆킬러 로봇 도입 두고 찬반 격론

13일 휴먼라이츠워치(HRW) 등에 따르면 킬러 로봇은 국제인권기준 및 국제법 등에 구애받지 않은 채 인간을 무차별 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반적인 교전 상황에서 인간 병사는 사람의 미묘한 목소리 톤, 얼굴 표정, 몸짓 등을 통해 다치거나 항복한 적군의 상황을 유추해 포로 수용 등의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킬러 로봇은 이런 작전 수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프로그래머가 사전에 각종 행동 지침을 만들더라도 실제 교전 상황에서 벌어지는 수만 가지의 특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 역시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버드대 법대 교수 마이클 슈미트는 “군사적 가치에 가중치를 둔 프로그램을 탑재한 킬러 로봇이 공격 목표 인근에 있는 시민들을 학살하는 공격을 자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와 같은 프로그램은 오직 이기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는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킬러 로봇이 ‘인명 피해’라는 변수를 무시한 채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킬러 로봇이 대량학살 등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경우 법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킬러 로봇은 정의상 100%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소송의 대상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댈러스 경찰이 사용한 킬러 로봇
반면 도입 찬성론자들은 사막에 있는 군사 기지나 해저에서 운용되는 잠수함, 하늘의 로켓 등 특수 목적으로 킬러 로봇을 사용하면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또 반대론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문제점은 기술 개발이 더욱 이뤄질 경우 보완 또는 해결 가능한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폴 월드만은 “가령 전장에서 한 사람이 옷 안에 불룩한 물체를 넣고 걸어가고 있다면 인간 병사는 그것이 폭탄인지 잘 구별할 수 없지만, 킬러 로봇은 각종 정보를 취합해 좀 더 합리적으로 그 사람이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며 “킬러 로봇이 제작 초기에는 판단력이 낮을 수 있지만 기술개발이 진행되면 더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킬러 로봇 시장 뛰어든 군사 대국… “올해 규제안 마련될까”

찬반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러시아 등은 언제든 킬러 로봇을 양산할 채비를 갖춰 놓고 있다. 먼저 미국은 올해 킬러 로봇과 같이 독립적인 행동이 가능한 기계에 관한 규제를 새로 정비한다. 2012년 미 국방부는 자동작전 수행 기능이 거의 갖춰진 반자율 기계 로봇의 개발을 유예하는 방안을 공표했는데, 올해 기한(5년)이 만료된다. 미국은 이미 독립적으로 적을 찾고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해 180억달러 예산을 배정해 놓은 상태다. 미국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댈러스 총격 테러 당시 용의자를 진압하기 위해 킬러 로봇을 사용한 바 있다. 스티븐 그로스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은 “미국은 유엔이 만든 금지 조항을 준수하는 데 머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적들이 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왜 미국이 가만히 있겠는가”라며 미국이 킬러 로봇 활용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이슬람국가(IS) 조직원 살해에 이용된 러시아 킬러 로봇의 모습.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6.4㎞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도 살해할 수 있는 킬러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로봇의 개발 담당자인 드미트리 페르미노프 박사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기능 및 장거리 미사일 탑재까지 시도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로봇이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게 목표”라며 “군사 목적뿐 아니라 어떤 작전에도 킬러 로봇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유엔회의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유일하게 강제적인 킬러 로봇 개발 금지 조약을 지지한다고 밝힌 중국 역시 한편으론 크루즈 미사일에 AI 기술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메리 웨어햄 HRW 연구위원은 “현재 12개국이 킬러 로봇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에만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이 킬러 로봇 규제에 찬성 의사를 밝히는 등 반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유엔 등을 통해 선진국을 포함하는 국제적인 규제안이 올해 안에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