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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밟고 가라"..'바보 김수환'이 그리운 오늘
호국영인
2019. 2. 16. 11:18
"나를 밟고 가라"..'바보 김수환'이 그리운 오늘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명동성당·생가엔 추모물결
눈발이 흩날리는 15일, 오후 5시가 넘어가자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앞 발광다이오드(LED) 장미밭에 하얀 불이 켜졌다. 이 장미들은 10년 전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장식물이었다. 정원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서서 안내문을 읽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시간을 내 명동성당을 찾은 50대 가톨릭 신자 김서현씨는 "김 추기경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는데, 어릴 때부터 김 추기경을 마음속 아버지처럼 의지하며 지냈다"며 "돌아가신 때에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고 사나' 하는 걱정에 한 달가량을 눈물로 보냈다"고 선종 당시를 회상했다.
명동성당 지하 1898 광장에도 김 추기경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898 광장에는 김 추기경을 기리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추기경의 온화한 미소가 담긴 사진 옆에 서서 엄마와 딸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웃었다. 김 추기경의 생전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헤드셋을 쓰고 가만히 그의 목소리를 듣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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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살아 있는 김수환 추기경
1969년쯤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다는 홍모(79)씨는 "김 추기경을 5~6차례 만났다"고 기억했다. 홍씨는 "김 추기경님을 몇 번은 파리에서 만났는데, 좋은 호텔에서 머물러도 되실 분이었지만 꼭 파리에 머무르는 신학생이나 신부 집에서 묵으셨다"고 김 추기경을 그리워했다. 또 "김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명동성당부터 서울역까지 가득 찼던 조문 인파가 기억에 남는다"며 "대통령이 죽어도 그 정도는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추기경이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시골집에 멍석 깔고 앉은 저런 모습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추억했다.
20년간 명동성당에 다녔다는 김 카타리나(77)씨는 "김 추기경은 자신의 피와 땀을 전부 짜내 좋은 일만 하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할머니와 딸, 손녀 3대가 함께 사진전을 방문하기도 했다. 일곱살 박로휘양은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김 추기경님은 가난한 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로휘양의 엄마 백승주(37)씨는 "사람의 마음을 비우는 것조차 어려운데, 항상 가난한 사람을 도우신 그분은 따라가기조차 어려운 분"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에게서 견진성사를 받았다는 박규태 수원과학대 교수는 "김 추기경은 다른 신부님과 주교님들이 낼 수 없는 목소리를 내셨던 분"으로 김 추기경을 추모했다. 그는 "암울했던 시절에 다른 사람들이 침묵할 때 하느님만 믿고 독재 정권에 맞서는 일을 누가 할 수 있었겠느냐"며 "한국 역사에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은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처럼 한 세기에 한 사람 나올까 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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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에도, 추모공원에도 끊이지 않는 발길
김 추기경이 유년시절을 보낸 군위 생가에도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생가는 김 추기경이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지낸 곳이다. 김 추기경 생가와 나눔 공원 기념관을 찾은 추모객들은 김 추기경 동상을 안으며 그를 기렸다. 시민들은 옹기장수의 아들에서 우리나라 첫 추기경이 되기까지 그의 삶을 기록한 전시관에 머무르며 김 추기경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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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열리는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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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메달 판매·서체 개발도
기념 메달 판매·서체 개발도
이수정·김정민·이병준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